정원수 부국장
광고 로드중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공소장엔 이른바 ‘삼청동 안가(安家)’ 모임이 4번 등장한다.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군 장성에게 계엄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하던 지난해 3월 말∼4월 초부터, 5∼6월경, 6월 17일 각각 한 차례, 그리고 같은 해 12월 3일 비상계엄 당일 국무회의 직전에 대통령이 경찰 지휘부에 국회 통제 계획을 전달했을 때였다.
재판관 8명, 4 대 4 양극화에 소장 부재
공교롭게도 삼청동 안가에서 가장 가깝고, 대부분의 동선이 겹치는 곳이 헌법재판소의 소장 공관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헌재 측 인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인사는 대통령이 삼청동 안가에서 자주 저녁 모임을 하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하면서 불편해했다. 어쩌면 윤 대통령과 헌법재판소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광고 로드중
게다가 8명의 재판관 중 절반인 4명(김형두 정정미 김복형 정형식)은 추천이나 지명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면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한때 윤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로 검토했다. 증인뿐만 아니라 재판관들 역시 현직 대통령이 면전에 있다는 부담감을 적잖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마치 남극과 북극처럼 양극화된 헌재 재판관이다. 얼마 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 심판을 기각하면서 4 대 4로 나뉘었다. 방통위의 설립 및 입법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는 재판관들, 방통위법을 문구대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여기에 내부 불화설까지 불거지면서 헌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의 갈등을 조정할 리더가 잘 보이지 않는다. 헌재 소장 부재라는 리더십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시작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사안의 중대성, 파급효과 측면에서 교범이 될 정도의 재판이어야 한다. 헌법 해석의 최고 기관인 헌재의 재판 절차나 최종 판단을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면 헌재의 위기, 더 나아가 국가의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헌재가 논란이 될 수 있는 증거들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공통점을 찾아서 전원일치 결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엔 여야 모두의 추천을 받았던 재판관이 중재 역할을 했다. “OOO 재판관이 있어 합의가 가능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한 재판관이 이번에도 나올까.
광고 로드중
‘전원일치냐, 아니냐’에 헌재 운명 달려
요즘 문 대행은 정치적 편향 논란에 휩싸여 있다. 대행부터 물처럼 더 자세를 낮추고 생각이 다른 동료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파면 여부를 떠나 비상계엄 사건은 사회적 파장이 워낙 커 만장일치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분쟁의 종결자’가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