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이란?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 궤변과 억지로 채워진 尹 측 헌재 주장 구한말도 아닌데 ‘계몽당할’ 국민 있을까
천광암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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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계몽의 정의다.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서 윤 대통령 측 조대현 변호사는 “국민들은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폈다. 12·3 비상계엄이 ‘계몽령’이면, 윤 대통령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이고 국민은 무지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우민(愚民)’이라는 말인가.
헌재 탄핵심판에서 윤 대통령 측 궤변이 도를 넘고 있다. ‘계몽령’처럼 국민을 바보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황당한 주장이 난무한다. 12·3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인 계엄포고령을 둘러싼 강변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엔 윤 대통령이 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계엄포고령 1항이 헌법과 계엄법 등에 비춰 위헌·위법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을 찾아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조차도 이 조항이 “상위법규에 위배된다”는 점은 자신의 입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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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해 헌재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진술조차도 윤 대통령의 주장과 배치된다. 다음이 반대신문에서 국회 측 변호사와 김 전 장관이 주고받은 문답이다.
변호사: “포고령이 집행 가능성도 없고 실효성도 없다, 이렇게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말씀하셨어요.”
김 전 장관: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주무장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그러면 효력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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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실제로 집행하려고 하셨어요?”
김 전 장관: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도 김 전 장관의 증언 쪽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포고령 발령 무렵부터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가결 전까지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조 청장,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야,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야, 체포해”라고 지시까지 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당초 포고령에는 ‘야간 통행금지 항목’이 있었는데 검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빼라고 해서 뺐다는 게 김 전 장관의 증언인데 실행하지도 않을 포고령이면 굳이 왜 빼라고 했다는 말인가, 명백한 불법 조항은 그대로 방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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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불법 계엄을 뒷받침하는 진술과 증거는 넘칠 정도로 많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둘러업고 나오라고 해”라는 지시를,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부수고라도 사람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각각 윤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도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 기회에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했다. 불명예 퇴역한 전직 장성이 현직 정보사령관을 수하처럼 부리면서 “부정선거와 관련된 놈들을 다 잡아서 족치겠다”고 준비시킨 야구방망이도 물증으로 확보돼 있다. 실행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없었고 정상적인 계엄이라고 우기기에는 ‘시신’이 너무 많은 ‘사건 현장’인 것이다.
지금이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구한말도 아니고, 윤 대통령 측이 쏟아내는 허무맹랑한 궤변에 ‘계몽 당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