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보이어 제넨텍 창업자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 모든 발전의 시작에는 허버트 보이어라는 교수 출신 창업자가 있다. 1976년 보이어가 제약사 제넨텍(Genentech)을 설립한 것은 현대 생명공학 산업의 문을 연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그는 ‘학자 기업가(Academic Entrepreneur)’의 전형적인 사례로, 생화학과 유전자 연구의 학문적 성과를 상업화해 과학이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이다. 참고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든 바이오엔테크의 창업자 우우르 샤힌 역시 학자 출신 기업가다.
생화학과 유전자 연구에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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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그는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샌프란시스코)에 교수로 부임하며 그의 연구 여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UC샌프란시스코는 당시 생명과학 연구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고, 보이어는 이곳에서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연구에 몰두하며 중요한 발견들을 이어갔다.
보이어는 특히 제한효소의 활용 가능성에 주목했다. 제한효소는 DNA의 특정 염기서열을 자르고 붙일 수 있는 도구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핵심이다. 1973년에는 스탠리 코언 스탠퍼드대 교수와 협력해 박테리아에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혁신은 단순한 학문적 발견에 머물지 않고, 유전자 조작을 통한 단백질 생산과 질병 치료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이는 생명공학의 초석으로 평가받으며, 현대 바이오테크 산업의 출발점이 됐다.
제넨텍 탄생: 학문-비즈니스 융합
제넨텍은 보이어와 벤처 캐피털리스트 로버트 스완슨의 협력으로 1976년에 설립됐다. 당시 보이어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상업화하자는 스완슨의 제안에 동의하며 학문적 연구를 산업으로 확장할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또 스완슨은 과학적 혁신의 잠재력을 읽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사업적 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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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제넨텍은 세계 최초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활용해 인간 인슐린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 당뇨병 환자들은 동물에서 추출한 인슐린에 의존해야 했지만, 제넨텍의 기술은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인간 인슐린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제넨텍은 성장호르몬과 같은 단백질 기반 약물을 개발하며 생명공학 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82년 미 대형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제넨텍의 기술을 활용해 제조한 인간 인슐린이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생명공학 의약품의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제넨텍의 기술은 당뇨병, 성장 장애, 암과 같은 질병 치료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학자 기업가의 표준, 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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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보이어는 스완슨과 같은 비즈니스 전문가와 협력하며 과학적 발견을 현실화하기 위해 과감히 학계의 경계를 넘어섰다. 학자 기업가들이 흔히 직면하는 약점은 기업 운영, 투자, 비용 구조, 그리고 수익 창출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학자 기업가들이 자신의 연구를 아무런 외부 도움 없이 상업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보이어는 이러한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역량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를 찾아 협력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단순히 상업적 성과에 집중하지 않고 학자로서 생명공학 기술의 윤리적 측면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연구와 상업화 과정에서 기술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깊이 고민하며, 과학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견지했다.
참고로 보이어는 제넨텍을 설립한 후에도 오랜 시간 UC샌프란시스코에서 교수직을 유지하며 학문적 연구를 지속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학자로서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통해 과학적 발견이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국에 성공한 학자 기업가 왜 적나
미국은 대학과 기업 간 긴밀한 협력 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대학은 기술 이전, 벤처 설립, 산학 협력 센터 등을 통해 학문적 발견의 상업화를 적극 지원한다. 기업 또한 연구 결과의 상업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활용해 연구실의 지식을 상업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수들의 연구가 기업에 유의미하게 활용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경영학자로서 두 가지 핵심 원인에 주목하고 싶다. 첫 번째로, 한국 교수들의 승진 및 인센티브 구조는 단기간에 실패 없이 성과를 내야 하는 지엽적인 연구를 장려한다. 대학의 승진 및 인센티브 구조를 보다 장기적이고, 사회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 번째로, 교수 자신을 포함해 대학 이해관계자들은 여전히 교수를 ‘선비’로 간주하며,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교수들의 연구 성과가 단순히 교육 소재로만 활용될 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산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 혁신 시대에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교수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일은 규제가 아니라 지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져야만 학문적 발견은 세상에 기여할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는 보이어의 철학이 한국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 과학적 성과가 단순히 연구실 안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산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문화와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