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찍은 美시민들 인터뷰 “트럼프, 뜬구름 잡지 않고 물가 얘기”… “기업 옥죄는 족쇄 풀어줄 것” ‘동떨어진 현실 감각’ 민주당에 실망… “해리스, 민생 대신 낙태권만 거론” “트럼프, 억만장자만 선호”… 돌출 발언 등 ‘트럼프 리스크’ 여전
한파가 몰아닥쳐 급격히 추워진 날씨 속에서도 시민들은 환한 표정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트럼프 2기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그는 “뜬구름 잡는 얘기보단 경제와 물가를 계속 얘기하는 트럼프를 보면 그날 내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동시에 “트럼프에 대한 내 지지는 민주당에 실망한 반사효과이기도 하다”면서 “그를 지지하는 내 마음의 기둥이 그리 단단하진 않다”고도 했다.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언제든 그 지지를 철회할 준비도 돼 있다는 의미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남부 ‘선벨트’ 경합주인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잡은 데 이어 최대 승부처로 꼽히던 펜실베이니아주까지 거머쥐는 등 경합주들을 휩쓸며 예상과 달리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미국민들은 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많은 힘을 실어줬을까. 대선 후 시간이 좀 흐른 현재, 시민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또 트럼프 2기에 대한 우려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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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내는 지도자 원해”
지난해 대선 결과가 나온 뒤 주요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유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급등한 물가 등 경제적 이유를 첫머리에 올렸다. 실제 앞서 CNN 출구조사 땐 미국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응답한 투표자는 67%에 달하기도 했다. 응답자의 45%는 4년 전보다 자신의 재정 상태가 나빠졌다고 밝혔고, 고물가 때문에 고통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75%나 됐다.
이번에 만난 시민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와 관련해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꺼냈다. 교사인 조너선 브룩스 씨(32)는 “난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으로 예의를 중요시하는 집안에서 자랐다”면서도 “이젠 예의를 차리기보단 결과를 내는 지도자를 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좀 거칠고 투박해도 트럼프처럼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사처럼 적극적으로 나서 줄 리더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기업가인 벤저민 톰슨 씨(52)는 “민주당의 거미줄 같은 규제는 나처럼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발목까지 붙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을 옥죄는) 족쇄를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하루 앞둔 19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의 ‘캐피털원아레나’에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2만 석 규모의 실내 경기장인 이곳에선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자축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회’가 열렸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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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약쟁이 쓸어 줬으면”
이번에 만난 시민들 가운데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을 뽑은 선택을 아직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당선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에 대해 나쁘지 않게 평가하는 데다 이제 막 취임한 만큼 일단 긍정적으로 지켜보겠다는 마음인 것으로 풀이된다.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한 라틴계 시민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추방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다행”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표현했다. 그는 “난 이민자로 여기 와서 정착했다”면서도 “같은 동포라도 불법 이민자들이 몰려들면 내 경쟁자가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냉정하게 보일지 몰라도 어쩔 수 없다”며 “난 내 생계가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회사원인 매슈 화이트 씨(48)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몇 명 있다. 그들이 10년 전에 편하게 가던 곳들을 이젠 (마약류인 펜타닐 때문에) 가기 힘들어졌다고 하더라. 트럼프가 이런 약쟁이들부터 싹 쓸어줬으면 좋겠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에 나섰다. 자국 경제가 어려운데 바이든 정부가 해외에 지나치게 ‘퍼주기’를 해온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한 시민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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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내 물가 못 잡으면 지지층 절반 잃을 것”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결과 불복, 강성 지지층의 2021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 난입 선동 등 혐의로 지난해 전현직 미 대통령 최초로 형사 기소된 바 있다.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지만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의구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시민들도 있었다.
존 리 씨는 “난 트럼프란 인물 자체는 여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면서 “(트럼프가) 1년 내 물가를 못 잡으면 지지층 절반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저민 톰슨 씨는 “트럼프가 나처럼 작은 기업 경영자들도 ‘잘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를 뽑은 건 맞다. 그런데 정작 당선되고 나선 일론 머스크 같은 억만장자들만 만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작 나같은 사람들은 혜택에서 소외될 거란 불안감이 있다”고 토로했다.
회사원인 에밀리 린 씨(28)는 인상을 쓰며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의 말이나 행동은 (이미 겪어봐서) 놀랍진 않다. 그런데 그 주변 인물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보기 싫은 폭스(뉴스) 출신들은 왜 자꾸 뽑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거기 스튜디오를 통째로 (백악관에) 옮기라고 해라.”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