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안유성 셰프. 사진제공=넷플릭스
지난해 12월 말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낯익은 얼굴이 수시로 찾아왔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를 통해 주목받았던 대한민국 제16대 조리 명장 안유성 씨(53)다.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을 때, 안 명장도 마찬가지였다. 사고를 당한 이들 중에는 안 명장의 주위 사람들이나 같이 방송했던 사람도 있었다.
“거길 가긴 가야 겠는데 가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김밥을 조금 마련했어요”
광고 로드중
안 명장은 자신이 가장 잘 할수 있는 요리로 나마 도움을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참사 다음 날인 30일 김밥 200인분을 싸들고 무안공항으로 향했다.
유족들은 안 명장이 만든 김밥을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맛있어요….” 그 말에 안 명장은 뭉클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안 명장은 “준비도 많이 못 한 채로 갔는데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게…”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대로 된 끼니 4~5일 만에 처음”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안 명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러던 중 소방관이나 특수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4~5일 동안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고 로드중
“제대로 된 밥은 4~5일 만에 처음 먹어봐요.” 현장을 수습하던 소방관, 군인, 경찰들이 말했다. 이들은 그동안 컵라면과 김밥만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안 명장은 곧바로 따뜻한 곰탕 500인분과 수육, 제육볶음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소방관·군인·경찰 등 현장 관계자들에 나주곰탕을 조리하는 흑백요리사 안유성 명장. 2025.1.6./뉴스1
안 명장은 참사 다음 날 김밥 200인분을 시작으로, 새해 첫날인 1일은 기력을 되찾을 수 있게 전복죽 1000인분과 떡갈비를 준비했다. 또 지난 5일에는 곰탕 500인분과 수육, 제육볶음 등을 만들어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루는 음식을 준비하고, 하루는 현장에서 가서 나눠주는 식으로 6일 정도를 봉사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광고 로드중
안유성 명장과 대한민국기능장협회 호남지회 회원들. 2025.1.6 / 뉴스1
안유성 명장 음식 봉사의 배경에는 다른 요리사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다.
안 명장은 가게 오너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반응을 제일 먼저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직원들도 그와 똑같은 마음이었다.
안 명장은 직원 모두가 “십시일반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들은 2~3일 정도 곰탕을 끓이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을 안 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현장에서도 안 명장 혼자 많은 유가족과 관계자를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다. 그 순간 조리사 협회, 조리기능장협회, 외식업 업체 위약과 옆에서 요리하던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안 명장은 이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표현했다.
안 명장은 자신의 봉사에 대해 “이슈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데 이슈화가 돼버렸다” 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도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다 같았을 것이라고 햇다.
“모두가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나도 그 자리에 가고 싶은데, 안유성이 ‘대표로 해줬다’ 이런 마음일거에요”
안 명장은 “그 마음들이 다 전해지는데 그것을 대표적인 안유성이라는 셰프의 입장으로서 전해지는 거다. 저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고, 열정적으로 했던 분들이 많은데 그게 묻혀지는 것이 조금 서운하다” 고 전했다.
끝내 울음 터트린 요리 명장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얼마 전 안 명장은 소방 관련 행정 업무를 위해 광주 소방서를 방문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이날을 꼽았다.
서부 소방관들이 그를 보자 기립 박수 치면서 좋아했다. 사고 현장에서 안 명장이 준비해 간 음식을 먹었던 소방관들이었다. 소방관들은 안 명장에게 “너무 감사하고,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앞으로 음식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뉴시스
유가족 중 안 명장의 가게 ‘가매 일식’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큰 힘이 됐다”는 유족의 말에 안 명장은 감동했다.
안 명장은 “일부러 찾아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시고 가는 것을 보니깐, 제 역할은 사소했지만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고 느꼈다” 고 말했다.
안 명장은 인터뷰 끝에 눈물을 보였다. “처음 현장을 찾아갔을 때 느낌은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는 울먹여서 죄송하다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요리하면서 음식으로 이렇게 그분들의 마음에 치유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최강주 동아닷컴 기자 gamja8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