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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를 보고 왔다. 새해에 보는 첫 영화로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안락사가 주제였으니까. 같은 잡지사에서 근무했던 동료이자 친구였던 잉그리드(줄리앤 무어)와 마사(틸다 스윈턴)는 ‘죽음’으로 다시 연결된다. 암 투병 중이던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스스로 죽음을 감행하는 그 순간 그저 옆방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고통에 가까운 고민 끝에 잉그리드는 친구의 청을 받아들인다. 마사가 추구하고 고집했던 것은 다만 깨끗하고 기품 있게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고, 잉그리드는 그 결정에 공감한다. 어느새 중년이 된 그녀 자신에게도 죽음은 삶보다 가까운 것이었기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친구의 결정을 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영화 속 공간 역시 눈부시다. 마사의 뉴욕 아파트 벽면에는 아트 피스가 총 세 점 걸려 있는데 하나는 젊은 시절 본인을 그린 듯한 자화상이고, 중앙에 걸린 작품은 스페인 사진작가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로데로의 작품이다. 검은색 옷과 신발, 베일로 온몸을 감싼 이들이 서로 팔짱을 낀 채 연대하고 있는 모습. 스페인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검은색으로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게 문화다. 마지막 그림은 글자 그 자체로 미술이 되는 ‘텍스트 아트’로 액자 안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나는 지옥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말하자면 그곳은 황홀했습니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삶과 죽음, 생의 고통과 환멸을 다룬 현대미술의 아이콘 루이즈 부르주아가 1996년 손수건에 자수 새긴 것과 같은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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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네 삶은 평생 내 자리, 내 공간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방, 내 차, 내 집을 거쳐 마지막에는 내가 묻힐 그 자리까지. 영화 속 마사는 주삿바늘과 호스를 치렁치렁 매단 채 죽음을 맞는 병실 대신, 숲이 울창하고 새가 노래하고 수영장 물이 반짝이는 뉴욕 외곽의 그림 같은 별장을 생의 마지막 공간으로 택한다. 죽음에도 돈이 든다는 것이 씁쓸했지만 그 선택만큼은 깊이 수긍했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정신은 계속해서 바뀐다.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을 허용한 때가 이미 1942년이다. 어떻게 살지만큼이나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가 개개인이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로 다가올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바라건대 최종의 그 자리에 많은 선택지가 있기를, 우리 모두가 말년의 인생에 평안히 가 닿기를.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