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자오니 그 글씨가 한 시대에 가장 뛰어났다 하니 감히 사사로이 소장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600년(선조 33년)에 우의정 김명원(1534~1602)은 명나라 사람에게 얻은 화가 문징명(1470~1559)의 서첩을 선조에게 바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에 선조는 “말로만 듣던 것을 직접 보게 되니 진실로 기쁘다”며 그에게 모전(毛氈‧짐승 털로 짠 양탄자)을 하사했다. 당시 명대 서화가 조선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명나라 시대는 화풍과 화파의 변화가 극심했다. 초기엔 궁정 화가 중심의 ‘절파(浙派)’, 중기엔 송·원시대 문인화를 발전시킨 ‘오파(吳派)’가 흥했다. 후기에는 ‘상남폄북(尙南貶北)’을 주장한 화가 동기창(1555-1636)의 문인화론이 대세였다. 상남폄북이란 문인 화가들이 그린 남종화(南宗畵)를 숭상하고 직업 화가의 북종화(北宗畵)는 배척한다는 뜻이다. 이런 흐름은 조선으로 전해진 뒤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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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중국 랴오닝성의 자매 결연 3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전시는 중국에서 반출이 쉽지 않은 국가 1급 유물 6점을 선보인다. 6점 모두 한국 전시는 처음이다. 이소희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명나라 전기부터 후기까지 고루 살필 수 있는 국보급 서화들이 이례적으로 한꺼번에 선보이는 전시”라고 말했다.
여기의 사자머리 거위. 경기도박물관 제공
심주의 국화 감상. 경기도박물관 제공
구영의 적벽부. 경기도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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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