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땐 하루이틀에 80~90%씩 폭락… 자기 스타일 따라 투자처 정해야
“요즘 사람들이 미국 주식을 정말 많이 하더라고요. 주식을 처음 하면서 아예 미국 주식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많고요. 미국 주식이 대세인 것 같아요.”
이에 대한 나의 답. “미국 주식을 하는 사람 중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시작한 경우가 많은데, 아직 그 무시무시함을 몰라서 그래요. 지금은 미국 증시가 상승세라 좋아 보이지만, 미국 주식이 떨어질 때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떨어집니다. 그걸 경험하고 나면 차라리 한국 주식이 낫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최근 미국 증시가 상승세라고 해서 반드시 미국 주식투자가 유망한 것은 아니다. [GettyImages]
광고 로드중
첫 번째는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유상증자다. 주식이 좀 오를 만하면 거의 매번 유상증자가 발표됐다. 모든 기업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국 주식을 하는 몇 년 사이 여러 차례 유상증자를 ‘당했다’. 유상증자가 발표되면 주가가 폭락한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면 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
두 번째는 거래정지다. 기업에 무슨 일이 생겨 주가가 폭락할 것 같으면 거래정지를 해버린다. 또 주가가 지나치게 오른다 싶을 때도 거래정지를 한다. 명목상으로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주가 폭락이 투자자에게 더 해로운가, 아니면 거래정지가 더 해로운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주가가 폭등할 때도 거래정지를 한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이 볼 때 이 주식의 주가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데, 그 이상 오르면 투자자들이 비이성적으로 투자한다고 여기고 거래를 정지해버린다. 나 나름 고심해서 좋다는 주식을 샀는데 거래정지를 몇 번 맞으면 정이 떨어진다.
세 번째는 실적과 무관하게 형성되는 주가 수준이다. 정치 이슈, 트렌드에 따라 움직이는 주식은 실적과 상관없이 주가가 출렁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실적 개선 정도에 비례해 장기적으로 주가가 올라야 한다. 그런데 한국 주식 중에는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사례가 적잖게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상속세다. 상속을 준비하는 기업은 주가가 상승하면 상속세가 더 오른다. 이런 기업들은 주가 상승을 막으려는 강한 동기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내가 기업을 분석하면서 회장(대주주) 나이가 몇 살인지, 상속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까지 살펴봐야 하나. 한국에서는 실제로 상속 계획에 따라 기업 분할·합병 등이 이뤄지니 주식투자를 하려면 상속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승리를 위해 열심히 뛰지 않는 선수가 많은 경기 판에는 베팅을 해선 안 된다. 내가 한국 증시에서 손을 뗀 주된 이유다.
성장성 없는 기업 곧장 퇴출
광고 로드중
즉 내가 미국 주식을 하는 이유는 유상증자에 따른 주가 하락이 없다는 점, 거래정지가 없다는 점, 그리고 주가가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상장기업이 없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미국 주식이 한국 주식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 주식을 갖고 있으면 수익이 더 커질 거라고? 종목과 관계없이? 주식이 그렇게 쉬울 리 있나. 미국 주식 수익률이 그렇게 좋다면 미국에서 투자하는 미국인은 모두 부자가 됐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나라 주식이든 투자는 어렵다. 지금 미국 주식이 좋아 보이는 건 최근 몇 년간 미국 증시가 상승세였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좋은 걸 가지고 “원래 그렇다” “미국 주식이 답이다”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내가 보기에 미국 주식의 가장 무서운 점은 떨어질 때 끝없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 주식의 경우 ‘잡주’면 몰라도 대기업 주식은 하락할 때 일정 한도가 있다. 실적 악화나 경영상 부정 이슈로 주가가 내리더라도 그 수준이 20~30%인 것이다. 50% 하락이면 정말 엄청난 수준이고, 장기면 모를까 단기로 그렇게 폭락하는 주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아니다. 아무리 유망 기업이고 대기업이라 해도 예상치 못한 적자를 내거나 부정 논란에 휘말리면 그대로 폭락이다. 사업 모델에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그렇다. 이때는 50%가 아니라 80~90% 폭락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광고 로드중
미국 증시는 장기적으로 계속 올랐다.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월등한 실적이다. 그러나 미국 주식이 그렇게 많이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면에는 실적이 안 좋은 기업, 좀비 기업을 인정사정없이 퇴출시키는 분위기가 있다. 기존 투자자를 보호하고자 성장성이 낮은 기업이라도 그냥 상장기업으로 살려둔다? 한국은 그렇지만 미국은 아니다. 상장기업으로서 가치가 없는 주식은 그냥 퇴출시키고, 새로 이익이 나는 기업을 계속 받아들인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주식이 계속 오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개별 기업으로 보면 폭락하고 퇴출당하는 기업이 엄청나게 많다.
분산·장기투자에는 미국주식이 답
그래서 미국 주식은 몇몇 기업만을 대상으로 투자하거나, 단기투자만 해서는 한국 주식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보다 폭락 가능성이 더 크다. 우량 기업 위주로 여러 기업에 분산투자하면서 장기적으로 접근하면 미국 주식은 분명 한국보다 유리하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주식은 오히려 더 위험하면 위험하지 한국 주식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미국 주식으로 ‘단타’를 하는데, 그럴 거면 한국 주식으로 단타를 치는 게 거래수수료도, 세금도 더 적게 든다.
나는 분산투자를 하는 장기투자자다. 그래서 유상증자, 거래정지 같은 이슈가 없는 미국 증시가 훨씬 좋은 투자처다. 하지만 집중투자, 단기투자, 트렌드 투자, 차트 투자를 하는 사람에게는 미국이 더 좋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니 무조건 미국 증시가 좋다고 생각하고 미국 주식에 들어가지는 말자. 자신의 투자 스타일에 따라 어디가 더 좋은지가 정해진다고 본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72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