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신작 장편소설 소설가, 자유로운 삶, 전업주부 다시 뭉친 동창 셋 일상 이야기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에쿠니 가오리 지음·김난주 옮김/360쪽·1만8700원·소담출판사
개성도 성격도 제각각인 이들이 오랜만에 다시 모이게 된다. 리에가 런던 생활을 정리하고 도쿄로 돌아오기로 한 뒤 집이 없다는 핑계로 다미코네에 얹혀살면서부터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장편소설인 이 책은 젊은 시절 절친했다가 오랜만에 다시 뭉치게 된 중년의 세 여성과 이들 주변 인물을 통해 소란스러우면서도 잔잔한 일상을 아기자기한 필치로 그려낸다.
도쿄에 몇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월세를 받으면서도 다미코네 집에 굳이 비집고 들어와 자기 방까지 꿰찬 리에를 다미코는 어쩌지 못한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집 없는 아이’가 돼버린 거라는 리에의 말이 그렇게 틀린 것 같이 느껴지지도 않아서다. 다미코의 엄마인 가오루는 딸보다 수다스럽고 쾌활한 리에와 죽이 잘 맞는다. 두 사람은 리에가 새 집을 찾는 동안 마치 모녀처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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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특별히 극적인 갈등이나 위기 상황 없이 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가오루의 발목 부상과 백내장 수술, 리에의 조카나 다미코 친구의 딸이 겪는 관계의 문제들, 사키의 큰아들이 결혼을 서두르며 속을 썩이는 일 등 일상에서 흔히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이들의 삶에도 얽혀들 뿐이다.
제목에 나오는 ‘셔닐’과 ‘노란 멜론’은 이들이 대학 시절 독서 동아리에서 토론까지 벌일 정도로 동경했던 어휘들이다. 인터넷 검색이 없던 시절, 영어책에 나오는 ‘셔닐’과 ‘캔털루프 멜론’이 정확히 뭔지 알 길이 없었다. 어감만으로 보면 한없이 근사하고 멋진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50대 후반이 돼 찾아본 셔닐은 ‘송충이’란 뜻을 가진 부슬부슬한 직물, 노란 속살을 가졌을 거라 생각했던 캔털루프 멜론은 멋없는 붉은색이다. 오랫동안 오해했던 외국어의 실제 뜻처럼, 젊은 시절 꿈꿨던 화려한 미래와 현실의 간극은 크다. 그래도 그 ‘웃픈’ 배신감을 두런두런 함께 나눌 이들이 있는 한 삶은 여전히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은 섬세하게 보여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