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는 돈 적고 대출이자 부담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전모 씨(65)는 6개월 전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고 있어 고민에 빠졌다. 은퇴 후 보유한 부동산을 정리해 대출금을 갚고 지방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려고 했지만, 집이 팔리지 않으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전 씨는 “처음 내놨을 때보다 가격을 1억 원 내렸는데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은퇴 후 고정 수입이 100만 원대로 줄어든 상태라 대출 이자 부담이 상당히 크다”고 했다.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쥐고 있는 한국의 고령층은 보유 자산에 비해 쓸 수 있는 돈이 적다. 현금화가 가능하고 배당 소득 등이 유입되는 금융 자산과 달리 부동산 자산은 즉시 유동화하기 어렵고 대출 이자 등으로 그나마 있는 소득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인이 보유한 순자산의 77.1%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 비율은 22.9%에 그쳤다. 한국인의 비금융자산 보유 비율은 미국(37.3%), 일본(43.1%, 2022년 기준)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전 씨처럼 한국에선 집 한 채가 고령층 보유 자산의 대부분인 경우가 많아 노인 빈곤층의 비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14.2%)의 3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OECD는 빈곤율을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을 가진 인구 비율’로 정의하고 있는데, 보유 자산을 고려하지 않는 OECD 기준에선 ‘똘똘한 집 한 채’로 노후를 대비한 한국 고령층 상당수는 빈곤층으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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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의 높은 부동산 비중은 경제 성장 동력도 약화시킨다. 주식, 채권 등으로 흘러갈 자본이 부동산에 묶이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더 많은 자금이 공급돼야 한다”며 “국내외 금융 여건이 완화되는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이 과도한 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
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
뉴욕=임우선, 파리=조은아 특파원
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