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설마 또 탈원전?” 술렁이는 원전업계 [세종팀의 정책워치]

입력 | 2024-04-22 17:34:00


“설마 또 탈원전하는 건 아니겠죠? 기자님은 뭐 들은 얘기 없으세요?”
최근 한 원자력발전소 부품업체 대표께 전화로 안부를 여쭈었더니 돌아온 질문입니다. 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이전 정부의 정책 기조였던 ‘탈원전’이 국회발로 다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건데요. 22대 국회가 역대급 여소야대 지형으로 문을 열게 되면서 원전업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사실 추가 원전 건설 등이 포함된 전력수급 계획을 만드는 건 정부 몫이니, 야당이 직접 영향을 끼치긴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야당 반대로 원전 확대 정책의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는 타당해보입니다. 원전보다는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주장하는 야당이 법안과 예산 통과를 지렛대 삼아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거죠.

총선 전인 올해 초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올해 원자력계 신년회에는 이례적으로 2개 부처 장관이 함께 참석해 원전 확대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정부 부처와 업계 관계자 등 230여 명이 모여 원전 산업 전망을 공유했는데요. 역대 원자력계 신년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원자력 신년회, 산업·과기부 장관도 “2개부처 참석 이례적…정부 의지 보여줘”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40111/123010261/1)

원전업계는 ‘탈원전’을 두려워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장밋빛 전망 속에 신년회를 한 지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원전업계 관계자들은 ‘원전 확대 무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책 추진 속도가 상당히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탈원전 시기 원전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2016년 27조4513억 원에 이르던 업계 매출은 2년 뒤인 2018년엔 25.1% 줄어든 20조5610억 원이 됐습니다. 업계 인력도 3만7232명에서 3만6502명으로 줄어들었죠. 탈원전 시기, 수십 억 원짜리 기계를 헐값에 팔아 직원들 월급을 준 업체가 여럿 있었다고 하니 이들이 총선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해가 됩니다.

(관련기사: 脫원전 5년에… 원전中企, 아직도 ‘일감 보릿고개’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40222/123633004/1)


“민주당이 설마 탈원전까지는 안갈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야당 공약은 현 정부 기조와는 확실히 다르잖아요? 일단은 정부나 국회에서 어떤 액션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는 분위기인데, 우려스러운 마음이 커지는 건 사실입니다.” (A 원전 검사업체 대표)

자료: 원자력산업실태조사



앞으로 원전 정책을 두고 정부와 야당의 의중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각각의 국면에서 서로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원전 정책의 향방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듯합니다.



1. 신규 원전 건설 계획(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가 2년마다 짜는 15개년 법정 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이 곧 발표됩니다. 이 계획은 사실상 윤석열 정부 후반기 에너지 정책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이게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원전을 몇 기 더 지을지’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총선 이전까지 전력업계에선 신규 원전 4기 안팎 추가가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여당의 총선 패배로 인해 정부가 이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정부가 앞으로도 원전 확대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일지, 야당과 합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타협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전력업계의 이목이 모이고 있습니다.


2. 21대 국회 임기 내 ‘고준위 특별법’ 통과 여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고준위 특별법)

이름도 긴 이 법안은 원전업계의 오랜 숙원입니다. 긴 이름만큼이나 논의 기간도 길었는데요.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처음으로 방폐장 선정에 나섰을 때 주민 반발 등 논란이 일면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는데, 20년이 넘게 지난 아직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위험한 방사능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법입니다. 이 법이 통과돼야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방사선의 세기가 강한) 방사능 폐기물을 보관, 처리할 근거가 생기는데요.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지금은 이 폐기물을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금 추세라면 2030년부터 원전 내 폐기물 저장시설이 순차적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그러면 멀쩡한 원전을 정지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정부는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야당을 설득해 법안을 통과시켜보겠다는 방침입니다.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등 몇 가지 쟁점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데, 이 법안 처리가 늦어진다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다만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고준위 특별법 통과 여부에 원전 확대 정책이 영향을 받는 건 아니다”라며 “신규 원전은 부지 내 수조에 저장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 ‘원전산업지원특별법’ 도입 여부

올해 2월 민생토론회에서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의 향후 추이도 지켜볼 만합니다. 원전 산업 지원 근거를 특별법으로 만들어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원전 확대 정책은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정부는 6월까지 법안 초안을 만들어서 하반기(7~12월) 중 입법 절차에 착수한다는 계획인데요. ‘정권과 무관한 원전 확대’라는 아이디어에 야당이 과연 동의해줄지가 의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아직 법안이 나온 게 전혀 없어서, 뭐가 나와야 논의를 해볼텐데… 현재 갖고 있는 입장을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당도 지금 있는 원전을 다 세우자 이런 게 아니다. 노후 원전의 수명이 만료가 돼 가고, 지진이 연달아 발생하는 등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안전을 어떻게 좀 더 강화할 거냐. 이런 데 대한 인식이 있는 거고.

현재 이미 원자력진흥법이 있지 않나. 이미 원전 산업을 지원하는 모법 이 있는 셈이다.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이) 원자력진흥법을 구체화시키는 형태가 될지, 특정 산업에 대해서 지원하는 법안 형태가 될지를 보고 판단해야 될 것 같다.”(민주당 관계자)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