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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승련]유엔 제재대상 北 석탄 수출선 첫 나포

입력 | 2024-04-03 23:51:00


우리 해경과 해군이 지난 토요일 여수 앞바다를 지나던 3000t급 화물선을 나포했다. 이 배는 중국 산둥반도에서 출항해 북한 서쪽 남포항에 열흘쯤 머문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중이었다. 선박에는 러시아 수출용으로 보이는 북한산 무연탄이 가득 실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의 석탄 수출은 대북 제재 대상이다. 이 배는 아프리카 토고 국적선이었지만 지금은 무국적이다. 비슷한 국적세탁 사례로 볼 때 북한 통제하의 선박으로 정부는 의심하고 있다.

▷이번 나포는 미국 요청에 따른 것으로,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 위반 의심 선박을 나포한 것은 처음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는 제재 위반이 의심되면 문제의 선박을 영해(領海)에서는 나포·검색·억류할 수 있다. 이 배는 북한 남포항 입출항을 전후로 국제적 의무인 자동식별장치를 껐다고 한다. 북한 흔적 지우기다. 우리 당국이 정선 명령을 내렸지만 불응했다. 중국인 선장은 “석탄을 실은 곳은 북한이 아닌 중국”이라고 부인했으나 정찰위성에 따르면 남포에 머물 때 석탄이 채워졌다고 한다.

▷이번 나포는 구멍 뚫린 대북 제재망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면서 안보리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2017년 이후로는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추가 제재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그 사이 벤츠 등 사치품이 평양으로 흘러들어갔다. 지난주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8인 패널을 아예 없애버렸다. 적절히 통제만 한다면 핵 가진 북한이 미국을 괴롭히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일 것이다.

▷북한에 선박은 생존 통로다. 중-러 국경에서 육상 운송도 가능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일정량 이상 수입이 금지된 석유 제품을 배에서 배로 옮기는 선상 환적을 자행하고, 미사일처럼 돈 되는 수출품도 배로 실어 나른다. 2002년 서산호 사건은 미국이 해상 차단의 근거 마련에 주력하게 된 계기가 됐다. 북한은 스커드미사일 15기를 예멘에 수출했는데, 미국 요청으로 스페인 해군이 공해(公海)에서 나포했다. 하지만 안보리 제재와 같은 근거가 없었던 때여서 미사일을 예멘에 넘겨야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대응의 속도와 강도다. 유엔에서 중-러가 북한 감시 패널을 없애버린 것은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우리가 선박을 나포한 것은 이틀 뒤인 토요일이었다. 미국은 과거에도 비슷한 위성 추적을 했지만 이번처럼 한국에 나포 요청을 한 적은 없었다. 북한은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하며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고 있다. 미국으로선 북한의 돈줄 차단도 중요하지만, 러시아 견제도 감안했을 것이다. 한반도 안보 질서는 우리 뜻과 관계없이 가변성이 더 커졌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