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40명 이상의 보수당 의원이 형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리시 수낙 내각이 법안 추진을 일시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반대파 보수당 의원은 더타임스에 “정부는 반대파의 규모에 당황하고 있다”며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이른바 ‘노숙인 텐트 사용 금지법’은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경우 노숙 행위를 경찰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1824년 노숙과 구걸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부랑자 단속법(Vagrancy Act)’을 대체하는 것이다. 당시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과 산업혁명의 여파로 실업자가 대거 발생하자 노숙자를 구금하는 법을 만들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를 주는 노숙인을 강제로 이동시키거나 최대 2500파운드(약 425만 원) 이하의 벌금형·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보수당 밥 블랙맨 하원의원은 “길에서 잠자는 사람들은 체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며 법안이 사회적 문제인 노숙인 증가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하룻밤에만 3900여 명의 노숙인이 길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맨 의원이 발의한 정부의 형법 개정안 반대 법안에 서명한 이들 중에는 보수당 당수를 지냈던 이언 던컨 스미스 의원이나 데이미언 그린 의원 등 보수당 주요 의원도 포함돼 있다.
타임스는 “해당 법안은 총선 전에 범죄에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보수당 전략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2월 21~28일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수당의 지지율은 20%로 기관이 조사를 시작한 1978년 이래 최저치를 찍었다. 야당을 중심으로 5월 조기총선론도 나오고 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