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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의사도 당한 주가조작… 범인 손목엔 ‘7억 명품시계’

입력 | 2024-03-16 01:40:00

[위클리 리포트] 검찰 금융·증권합수부 출범 22개월
7305억 챙긴 ‘라덕연 일당’ 56명… 금융위와 실시간 협업 수사 끝 기소
‘쌍용차 인수’ 에디슨모터스 사건… 청년-영세상인-주부 12만 명 피해
한 달간 계좌 분석해 자금흐름 파악




《‘여의도 저승사자’가 파헤친 주가조작

금융사기 등을 전담수사하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가 출범한 지 22개월이 흘렀다.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합수부가 수사한 주가 조작 사건 중 ‘라덕연 사태’와 ‘에디슨모터스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 의사 김모(가명) 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재활의학병원장 주모 씨로부터 수익률이 좋다는 투자처를 소개받았다. 주 씨 병원의 직원들이 대신 주식 계좌를 관리했고, 투자 수익이 나자 김 씨는 재투자를 반복하며 돈을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4월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이후 2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의료컨설팅 업체도 운영했던 주 씨의 ‘마수’에 걸려 빚더미에 오른 의사만 10명이 넘는다.



# 로또 1등에 당첨된 최모(가명) 씨는 10억 원이 넘는 당첨금으로 ‘인생 역전의 꿈’에 부풀었다. 당첨금 수령을 하며 알게 된 NH농협은행 지점장 김모 씨를 통해 돈을 더 불릴 기회도 얻었다. 지점장이 권유하기에 농협 관련 회사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았다. 주가 조작 범행에 걸려든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땐 수억 원의 빚만 지게 됐다. 김 씨는 투자자를 모집해준 대가로 이른바 ‘라덕연 일당’으로부터 2억5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로또 1등 당첨 피해자는 최 씨 말고도 2명이 더 있었다.



금융·증권 범죄는 이처럼 직업과 직군을 가리지 않고 타깃을 삼는다. 수사가 조금만 지체되면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자금이 고스란히 범죄자의 ‘뒷주머니’로 흘러간다. 규모가 큰 만큼 피의자도 많고, 피해자는 훨씬 더 많다. 피의자들은 돈을 잃지 않기 위해 똘똘 뭉쳐 검찰 수사에서도 쉽사리 자백을 하지 않는다.

검찰은 2022년 5월 이 같은 금융·증권 범죄를 엄단하고 근절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를 출범시켰다. 동아일보는 22개월 동안 합수부가 수사한 주요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 사상 최대 주가 조작 ‘라덕연 사태’

라덕연 H투자컨설팅 대표

합수부가 총 56명을 기소한 ‘라덕연 사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주가 조작 범행으로 꼽힌다. 지난해 4월 25일 프랑스계 SG증권에서 쏟아진 매도 물량으로 나흘 만에 시총 8조 원이 증발하면서 드러난 이 사건은 피해자가 최소 900여 명이다. ‘라덕연 일당’은 총 7305억 원에 달하는 범죄 수익을 올렸다.

당시 주가 폭락은 가상자산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공동창업자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를 합수부 수사1팀(팀장 이승학 부장검사)이 기소하기 하루 전 시작됐다. 1년 가까이 테라·루나 수사를 맡았던 수사팀은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를 개시하자마자 라덕연 H투자컨설팅 대표와 그의 최측근인 변모 씨, 프로골퍼 안모 씨에 대한 체포영장부터 집행했다. 주가조작단 수뇌부의 신병부터 확보하며 수사를 확대한 것이다.

이때부터 이 팀장(현 전주지검 형사3부장)과 박수, 차동호, 허성호 검사의 수사가 본격화됐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에 파견 중이던 이세원 검사도 수사팀에 합류했고, 한기식 조사기획관(현 부산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과 금융위도 수사팀과 실시간으로 협업해 사건의 전모를 규명해 나갔다.

라덕연 일당의 범행은 기존 방식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통정매매’(미리 주식 물량과 가격을 짜고 거래해 주가를 올리는 방식)에 ‘이동매매’ 방식을 더한 것이다. 고객 명의의 휴대전화와 계좌를 직접 개설받은 다음 직원들이 이를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거래했다. ‘공덕팀’, ‘청라팀’, ‘선릉팀’ 등으로 팀을 나눠 운영한 이동매매는 과거 한 사무실에 모여서 주가 조작을 한 것과 달리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투자자와 수익을 5 대 5로 배분한 라덕연 일당은 차명 계좌와 현금을 비롯해 미술 작품 판매 대금, 가짜 골프 레슨권, 승마장 회원권 등으로 수익금을 위장해 세무당국의 눈을 피했다. 고객이 ‘아들’ 투자자를 데리고 오면 그 사람 투자 수익의 3%를 추가로 건넸고,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오면 2%, 손자가 ‘증손자’를 데리고 오면 1%의 수익금을 주는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늘려 나갔다. 라덕연 일당의 핵심 간부들도 “부동산보다 수익률이 좋은데 왜 부동산을 하느냐”며 투자에 매진할 정도였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가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라덕연 H투자컨설팅 대표의 최측근인 프로골퍼 안모 씨로부터 압수한 롤스로이스 차량(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라덕연 측으로부터 압수한 7억5000만 원 상당의 스위스 명품 시계 ‘바쉐론 콘스탄틴’. 독자 제공

라 씨는 일반 직원들도 투자에 끌어들여 ‘이탈자’를 막았다. 직원들도 다른 고객들과 마찬가지로 본인 계좌를 동료 직원에게 맡겨야 했다. 직원들 간 소통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메시지가 지워지는 텔레그램을 사용했고, 팀이 다를 경우 사적 연락도 금지했다.

피해자를 모집하는 동안 라 씨와 측근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검찰은 현재 고급 외제차 롤스로이스와 앨릭스 카츠의 ‘메리골드’(1억7000만 원 상당) 등 고가의 미술품, 명품 시계 바쉐론 콘스탄틴(7억5000만 원)과 파텍 필립(2억 원), 루이뷔통 테이블, 에르메스 체스판 등을 모두 추징보전했다. 주가 조작과 자금 세탁에 이용된 10개 법인도 해산시켰다. 현재 1심 재판 중인 라 씨는 지난해 말 보석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 소액 투자자 12만5000명 울린 에디슨모터스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

“10년 안에 테슬라를 넘어서는 회사를 만들겠다.”

2020년 10월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회장이 tvn 토크쇼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던진 한마디는 시청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그는 2021년 쌍용자동차 인수전에 뛰어들며 “쌍용차가 파산하거나 청산되는 건 한국 경제에도 아까운 일”이라며 국민의 애국심도 자극했다. 그의 ‘큰 그림’에 에디슨모터스 자회사 에디슨EV의 주가는 같은 해 5월 1700원대에서 11월 6만3400원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인수 자금을 모두 확보했다”는 그의 공언과 달리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 잔금 2743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입찰 신청 당시 제출한 인수 대금 증빙 자료도 잔액증명서 등을 편취해 만든 가짜였다.

주가는 즉시 폭락했다. 범행 시작 전 5000명 수준이던 소액주주는 주가 폭락 시점에 13만 명에 이르렀고, 그 결과 12만5000명이 총 7000억 원의 피해를 봤다. 이미 1년 전 시작된 쌍용차의 기업회생 절차도 더 늘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인수가 무산된 후에도 강 회장은 “자금 조달 계획을 다 마련해 놨다”며 투자자들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했지만, 그 일당들은 주가 급등 시점에 보유 주식을 처분해 1621억 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사실이 드러났다. 에디슨EV는 지난달 상장 폐지됐다.

2022년 7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계좌 추적 기록을 넘겨받은 합수부 수사2팀은 팀장인 박건영 부장검사(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와 장대규 부부장검사, 정성헌 검사까지 한 달 동안 계좌를 확인하며 실마리를 찾아 나갔다. 쌍용차 인수 대금 3000억 원을 외부 투자로 확보했다는 강 회장 공언과 달리 에디슨모터스와 에디슨EV의 회삿돈 수백억 원이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다시 회사로 유입되는 ‘가장납입성’ 자금 흐름을 확인한 것이다. 외부 투자금으로 둔갑한 돈이 실제로는 마이너스 대출과 자기 자본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박 팀장은 압수수색 현장에서 텔레그램 대화방을 빠짐없이 하나하나 다운로드하며 범죄 증거를 확보했다. 장 부부장검사는 하루에 피의자 신문조서 200페이지를 작성했고, 주요 피의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마다 의견서 1000∼2000페이지가 재판부에 제출됐다. 수사팀은 에디슨모터스가 허위 증빙 자료를 제출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투자를 받은 혐의도 인지해 추가 기소했다.

강 회장을 철석같이 믿은 피해자들의 절절한 탄원서는 수사팀에 동기부여가 됐다.

막노동으로 산다는 한 청년은 “흑자 전환이라는 공시와 강 회장을 믿고 예금 5000만 원, 빚 5000만 원 등 총 1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내년 예정인 결혼도 미루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한 전통시장 상인은 “저런 분이 기업가로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정말로 괜찮겠다고 생각해 5년간 땀 흘려 모은 돈으로 4000주를 투자했다”며 “술이 없으면 잠도 오질 않는다. 내가 바보인 건지, (강 회장이) 순진한, 좋은 마음을 가진 국민을 이용한 것인지”라고 자책했다.

하동우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장은 “주가 조작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광범위하고 피해 액수도 막대한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평범한 국민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범인들이 반드시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공판 과정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