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약 절실한 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높이려면 급여체계 개편해야 [이진한 의사·기자의 따뜻한 의료기기 이야기]

입력 | 2024-03-13 03:00:00

세계 희귀질환의 날(2월 마지막 날)
한정된 재정-까다로운 조건에, 마음 놓고 치료 지속하기 어려워
약제 사전심의제도 있지만, 평균 통과율은 15%에 불과
치료 골든타임 놓칠 가능성 커




매년 2월의 마지막 날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이날은 사회에서 소외되기 쉬운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유럽희귀질환기구가 2008년 처음 제정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매년 5월 23일을 ‘희귀질환 극복의 날’로 기념해 왔는데 올해부터 세계적 추세에 발을 맞춰 세계 희귀질환의 날에 통합됐다.

‘따뜻한 환자 이야기’는 작년에 이어 다양한 질환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질환과 함께 살아가며 사회의 편견을 이겨내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올해 첫 ‘따뜻한 환자 이야기’는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 가지는 의미에 공감하며 희귀질환을 극복하고 일상 속 희망을 찾아가는 환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경의 종양 ‘신경섬유종증’ 신약 소식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위 사진 맨 왼쪽)과 신경섬유종증 환아의 아버지 임수현 씨,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자 유복순 씨(아래사진)가 희귀질환 환자들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신경섬유종증은 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에 생기는 종괴 및 반점이 가장 일반적 증상이며 중추신경계와 근골격계 및 혈관의 이상, 시력이 떨어지는 안과 증상 등을 동반한다. 질환으로 인해 생기는 종양이 악성일 경우 낮은 생존율로 생명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임수현 씨의 아들 임 군은 생후 100일쯤 신경섬유종증 진단을 받았다. 아이의 목 뒤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느낌에 병원을 방문했다. 목 안의 신경에 종양이 생겨 수술이 불가능하고 국내에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임 씨 부부와 임 군의 절실한 치료 여정이 시작됐다.

임 씨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치료법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다 세계적인 의학지 ‘셀’에서 해외 임상에 성공한 치료제 자료를 보게 됐다”면서 “우여곡절 끝에 미국 연구팀과 간신히 연락이 닿아 미국에서 3년 정도 치료를 받았는데 돈이 많이 드니 상주하지는 못하고 6개월에 한 번씩 미국에 가 치료를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 군은 해외 치료에서 극적인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신경섬유종증 신약이 국내 임상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당 임상연구 대상으로 선정된 임 군은 신약 복용을 통해 증상이 상당히 개선됐고 신약의 급여화로 현재도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올해 1월 1일부터 신경섬유종증 1형 소아 환자들에게 신약 치료 건강보험 적용이 되면서 그간 힘든 시간을 보내온 환자들에게 희망이 됐다”면서 “이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차원에서 큰 결실이지만 소아 환자에 한정된 급여로 인해 약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성인 환자들은 언제까지 치료를 지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소아 환자들 역시 급여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아직 관련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다”고 신약 치료 환경의 한계를 지적했다.


극희귀질환 신약, 건보 통과율은 평균 15% 불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위 사진 맨 왼쪽)과 신경섬유종증 환아의 아버지 임수현 씨,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환자 유복순 씨(아래사진)가 희귀질환 환자들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희귀질환 중에서도 유병률이 극히 낮아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되는 질환들이 있다. 이름도 생소한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질환은 체내에 이물질이나 병균 침입 시 이를 파괴하는 면역체계인 ‘보체’의 활성이 조절되지 않아 생기는 질환이다

급작스러운 병의 진행으로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으며 특히 진단이 늦어지면 사망이나 말기 콩팥 질환으로 번질 위험이 높아지는 만큼 진단 이후 최대한 빨리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유복순 씨는 평소 ‘워커홀릭’이라 불릴 정도로 30년 이상 사회복지사로 열심히 활동해 왔다. 언젠가부터 양치질을 하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없어졌고, 3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극심한 피로감이 나타났다. 휴직 소견서를 받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현저히 낮은 빈혈 수치가 측정됐다. 신장내과와 혈액종양내과의 협진 및 유전자 검사를 통해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을 받게 됐다.

유 씨는 “난생처음 듣는 병명과 극희귀질환이라는 말에 ‘그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의사가 치료 방법(신약)에 대해 설명을 해 줬는데 산정특례 혜택을 못 받는다면 1년 치료비가 5억 원 정도라고 했다”면서 “다행히 약제 사전심의제도를 통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그냥 주변 정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강희경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 콩팥센터장은 “2018년부터 보체의 과활성화를 막을 수 있는 신약 치료제에 국내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다만 신약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약제 사전심의제도를 통해 환자의 치료제 급여 적용 여부를 관리 감독하고 있다. 작년에는 신약들의 심의 통과율이 불과 5%였고, 평균은 15% 정도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강 센터장은 “고가의 신약 치료에 의료보험 재정의 한계가 있어 이런 제도가 있는 것인데 이러한 제도로 인해 환자 치료가 시의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대표적 질환이 바로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이라며 “72시간이라는 골든타임 안에 치료가 시작돼야 하는 병인데 치료제 사용이 제도에 묶여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