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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맞춤 대추야자 냉장고-‘얄라 그린’ 에어컨… 年매출 30% 성장

입력 | 2024-01-09 03:00:00

[위기극복의 새 길, 신중동]〈3〉 중동서 전자 영토 넓히는 LG
합작공장서 연 58만대 에어컨 생산… ‘메이드 인 사우디’ 애국 소비 열풍
아프리카 등 17개 국가에도 판매… 중동 OLED TV 시장도 79% 점유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도심에 위치한 LG전자-셰이커 대리점의 모습. LG전자는 리야드에 합작법인을 세워 ‘메이드 인 사우디’ 에어컨을 생산하고 있다. 리야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지난해 12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도심에서 약 50km를 달려 도착한 LG전자-셰이커의 에어컨 생산 스마트 공장. 직원 100여 명이 상업용 에어컨을 조립하고 있었다. 계절은 겨울이지만 한낮 기온이 26도까지 치솟았다.

이 공장의 규모는 4만2176㎡로 전체 직원은 220여 명이다. 대부분 현지 채용이다. 공장은 연간 40만 대의 가정용 에어컨과 18만 대의 상업용 에어컨을 생산할 수 있다. 에어컨은 사우디뿐만 아니라 중동·아프리카 17개 국가에서 팔린다.

8일 LG전자에 따르면 2022년과 지난해 LG전자는 사우디에서 가정용·상업용 에어컨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네옴시티(NEOM City)’ 등 대규모 프로젝트와 주택 건설 프로젝트가 사우디 전국적으로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에어컨 판매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1970년대 건설이 중동 시장을 개척했다면 지금은 LG의 가전,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삼성의 스마트폰이 3대 인기 품목”이라고 말했다.

● 합작 공장 덕에 ‘메이드 인 사우디’ 가능

LG전자는 2006년 중동 시장 공략을 위해 사우디 가전 유통업체 셰이커와 합작법인(JV)을 세웠다. 중동 현지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고, 물류비 절감을 통해 경쟁사들과 차별화하겠다는 취지였다.

LG전자의 에어컨은 ‘메이드 인 사우디’라고 표시돼 있는데, 이는 판매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우디 내 대규모 에어컨 공장을 갖춘 현지 기업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LG가 합작법인을 세워 사우디에서 에어컨을 생산해내자 사우디 현지인들의 애국 소비가 시작됐다. LG전자-셰이커 공장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를 시작으로 이웃 중동국으로도 LG 가전을 수출하고 있다. 사우디가 LG의 중동 공략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리야드 시내에 위치한 LG전자 에어컨 판매 대리점에는 혼수용 에어컨을 찾는 부부부터 사무실용 에어컨을 살펴보는 기업 관계자까지 다양했다. 프리미엄부터 중저가까지 제품에 붙은 ‘얄라 그린(Yalla Green·녹색으로 함께 가자는 뜻의 아랍어)’ 마크가 눈에 띄었다. LG전자는 인버터 에어컨 전 제품이 사우디 에너지효율 라벨 최고 등급(그린)을 받았다.

사우디는 사막 도심 지역을 녹지화하는 ‘그린 리야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포스트 석유 시대를 준비 중인 사우디는 2021년 10월 탄소 배출량을 2060년까지 ‘제로(0)’로 만들겠다는 목표의 ‘그린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고, 사막 위에 세운 도시인 리야드 전역에도 75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다. LG전자는 리야드 인근 타디끄 국립공원에 나무를 심고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며 협조하고 있다.

● 대추야자 냉장고 등 현지 맞춤형 전략
LG그룹이 중동 시장에 뛰어든 것은 2004년이다. 당시 세계 최초 대추야자 냉장고 ‘프리미안’을 선보였다. 한국에서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따로 두는 것처럼 중동에서 즐겨 먹는 대추야자 보관에 적합한 온도(영하 25도에서 영상 3.5도)로 조절할 수 있는 서랍형 냉장고를 출시한 것이다. 같은 해 나침반처럼 방위 표시 기능을 갖춰 항상 이슬람 성지 메카를 가리키는 ‘메카폰’을 출시해 이슬람 신도 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LG전자의 중동 공략 전략은 철저하게 현지 맞춤에 맞춰졌다. 2019년 세계 최초로 아랍어 음성 인식 기능을 탑재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선보였다. 광파 오븐에 중동 지역 특화 메뉴 맞춤형 조리 기능을 넣기도 했다. 중동 OLED TV 시장에서 LG전자 점유율은 2022년 78.9%(출하량 기준)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중동은 성장하는 대표 시장

사우디 가전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LG전자 리야드 법인 관계자는 “과거 사우디 소비자들은 새 제품이 아니면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엔 중고 제품도 구매하고 제품 교환 캠페인도 적극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에너지 등급이 낮은 오래된 제품을 가져오면 새 제품을 살 때 일부 금액을 보전해 주는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 에어컨을 공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사우디는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16.9%가 0∼9세일 정도로 ‘젊은 인구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최근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며 맞벌이가 늘고 대가족 중심의 가족 구성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러면서 주택, 가전 등에 대한 수요가 커졌고, 고효율 제품을 선호하게 됐다. 또 인프라나 노동시장 등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저유가로 사우디 내수시장이 침체됐던 2016년에는 LG전자 리야드 법인도 구조조정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20년 유가가 반등하기 시작하면서 가전 수요도 커지고 있다. LG전자의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매출은 2020년 2조2120억 원에서 2021년 2조7747억 원, 2022년 3조3572억 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글로벌 매출에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3.5%에서 2021년 3.7%, 2022년 4.0%로 커졌다. 특히 사우디 생산 법인 매출은 2020∼2022년 연평균 30%가량 성장하며 중동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리야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