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KAIST의 ‘24세 박사’ 시도… 꼭 성공했으면 하는 이유 [광화문에서/김창덕]

입력 | 2023-12-25 23:42:00

김창덕 산업1부 차장


국내 유명 공대의 A 교수는 틈만 나면 하는 얘기가 있다.

“대학원생 뽑기가 너무 힘들어요.”

우선은 본교 졸업생들의 대학원 지원자가 너무 적다고 한다. 해외 유학, 대기업 취업, 벤처 창업 등 다른 선택지에 비해 국내 대학원은 매력이 떨어져서다. 본교 졸업반 학생을 두고 교수들 간 쟁탈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다른 학교에서라도 우수 인재들이 와주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예전 같지 않다. 어렵게 선발한 뒤엔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주며 붙잡아야 겨우 과정을 마친다. A 교수는 “대학원생 기근은 매년 더 심해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 따르면 이공계 쏠림 현상이 점점 심화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공계 쪽 인재풀이 그만큼 풍부해졌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전통적인 대기업은 물론이고 네이버, 카카오, 우아한형제 같은 새로운 강자들도 이공계 전공자들을 집중 선발하니 그럴 만도 하다.

과학계에서 볼 때 고민거리는 최상위급 인재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공학자로 성장해야 할 이들까지도 모조리 의대에 진학하고 있어서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정원 3058명)이 매년 3000여 명을 먼저 뽑고, 그 후순위부터 서울대 KAIST 등의 비(非)의대가 선발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대학 진학 후 의대에 재도전하는 반(半)수생들도 적지 않다. 의사라는 직업이 과학자를 이른바 ‘고사(枯死)’시키고 있는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의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피인용 상위 1% 논문’은 2021년 14위였다. 2011년 13위에서 오히려 한 계단 후퇴했다. 중국은 2020년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고, 인도도 2011년 17위에서 2021년 9위로 8계단이나 올라섰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겠지만, A 교수의 푸념대로라면 한국의 순위는 점차 떨어질 게 뻔하다.

KAIST가 내년 시행할 ‘패스트트랙 박사’ 제도가 유독 눈에 띄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학부를 3년 만에 마치되 3학년 때 대학원(석·박사 통합 과정) 수업까지 듣게 해 박사 학위를 최대한 빠르게 취득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과학고 2학년을 마치고 KAIST에 조기 진학한 학생이라면 만 24세에 박사가 될 수 있다.

의사는 20, 30년 전에도 많은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꿈꾸던 직업이다. 하지만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던 아이들도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아이들에겐 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이 과학자를 압도하고도 남게 됐다. 진학률은 거기에서 결정된다.

‘24세 박사’를 키우겠다는 건 쉽게 말해 스타 과학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스타는 관심을 부른다. 2년이든, 3년이든 ‘남들보다 먼저’라는 유혹은 과학 영재들의 승부근성을 의외로 강하게 자극한다. 이런 제도 하나가 영재들을 ‘유인’할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 과학계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골프의 박세리, 야구의 박찬호처럼 ‘허준이 키즈’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더 많은 ‘허준이’를 키워내기 위한 이런 시도들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국 과학에도 미래가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