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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응 열사 넋 깃든 옛 공사관 118년만에 표식

입력 | 2023-11-01 03:00:00

한영수교 140주년 맞아 동판 제막
“이 건물은 자주독립 외교의 요람”
이한응 열사 을사늑약 앞두고 자결
유서 보도로 독립운동의 씨앗 돼




최응천 문화재청장(가운데)이 10월 30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켄싱턴구의 옛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건물 앞에서 이곳이 대한제국 공사관이었음을 알리는 동판에 씌워진 막을 걷어내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이 건물은 한국의 자주독립 외교 활동의 역사적 장소이자 한영 친교의 요람이다.”

영국 런던 켄싱턴구 얼스코트 트레보버 4번지에 있는 한 건물 중앙 출입문 위에 이곳이 1901∼1905년 주영국 대한제국공사관이었음을 알리는 동판이 10월 30일(현지 시간) 걸렸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영국 주재 외교관이던 이한응 열사(1874∼1905·사진)가 1905년 이 건물에서 순국하고 공사관이 폐쇄된 지 118년 만이다.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동판.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이날 주영 한국대사관과 함께 이 건물 앞에서 ‘옛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동판 제막식’을 열었다. 이 건물이 대한제국공사관으로 쓰이기 시작한 1901년 이후 122년 만에 그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곳은 비극적인 대한제국사와 항일운동사가 깃든 역사적인 장소다. 당시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서리공사였던 이한응 열사는 1905년 을사늑약을 앞두고 그해 5월 12일 이 건물에서 자결했다. 일본 정부가 한 해 전 런던에서 체결한 ‘제1차 한일의정서’ 제5조(대한제국 정부와 대일본제국 정부는 상호 간에 승인을 거치지 않고 뒷날 본 협정 취지에 어긋나는 협약을 제3국과 맺을 수 없다)를 근거로 공사관을 폐쇄하자 목숨을 바쳐 항거한 것.

자결 직전 이 열사가 남긴 유서 전문은 이후 대한매일신보에 보도돼 항일독립운동의 씨앗이 됐다. 당시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국가는 주권이 없고 인간은 평등을 상실하여 모든 교섭은 치욕이 망극하니 이 어찌 피 끓는 자가 참을 수 있는 일인가.”

이 열사가 순국한 주영 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의 외부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1960년대 영구임대주택으로 바뀌면서 내부는 개조됐다. 현재는 36가구가 거주하는 공공 임대아파트로 쓰인다.

문화재청은 2018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옛 대한제국공사관 건물 6곳(일본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의 현황과 매입 가능성을 조사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이미 실거주자가 있는 이 건물을 매입하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이 건물을 관리하는 영국 피보디사와 협의한 끝에 대한제국의 역사를 기념하는 영문 동판을 설치했다. 이제 이 거리를 지나는 누구나 이 건물에서 대한제국의 ‘자주 외교 활동’이 펼쳐졌음을 알 수 있게 됐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