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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군사 밀착 맞서 선언 이상의 北核 억지책 서둘러야[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입력 | 2023-10-30 23:39:00

6일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 선박 안가라호가 화물을 싣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 위성사진.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8월부터 최근까지 이 같은 방식으로 북한제 탄약과 무기가 러시아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진 출처 RUSI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러시아의 침공으로 600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우리에게도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다.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대한민국이 이 전쟁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북-러 정상회담 이전에도 북한은 다량의 무기탄약을 러시아에 전달한 정황이 속속 포착된 데 이어 회담 이후로도 나진항을 통해서만 최대 50만 발의 포탄이 제공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가 북한의 탄약 제공을 대가로 핵과 위성 기술을 김정은에게 전수할 경우 우리 안보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북한의 ‘핵 비수’가 더 날카롭게 벼려져서 대한민국을 겨누게 될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러 간 군사적 밀착과 이를 부추기고 방조하는 중국의 태도가 북한으로 하여금 더 대담한 ‘핵 도박’을 시도하는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명무실해진 것이 그 증거다. 김정은은 이런 상황을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서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일각에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을 용인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본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두 나라가 대한민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을 대미 견제 수단이자 전략적 경쟁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노골화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가 그나마 형식적으로 붙잡고 있던 북한의 ‘핵 제어 고삐’를 완전히 놓아버린 격”이라고 지적했다. “핵탄두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대”(2022년 12월), “무기급 핵물질의 생산 확대”(3월)에 이어 핵 무력 정책의 헌법화(9월) 등 김정은이 보란 듯이 핵 무력 고도화에 몰두하는 것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7차 핵실험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닌 시간문제일 뿐이다. ‘화산-31형’을 비롯한 전술핵을 다종다양한 투발수단(미사일, 핵어뢰 등)에 최적의 조건으로 장착하려면 최소 3, 4차례의 핵실험으로 성능과 기술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 북-중-러의 반미 결속, 이로 인한 국제질서의 소용돌이가 북한에는 핵 개발을 가로막는 ‘족쇄’에서 풀려나는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다.

현 국제질서 위기는 대한민국에 미증유의 안보 도전이 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만큼 호전적으로 핵 공격을 위협한 세력이 여태껏 없었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지난달 미 국무부가 북한이 전쟁 단계 어디에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이 여러 차례 용산 대통령실과 평택 미군기지 등을 손으로 가리키며 전술핵 공격 훈련을 지휘한 것은 개전 초 한국 지휘부와 군사 거점을 핵으로 초토화해 일거에 대남 적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협박 그 자체다.

한미 양국은 ‘워싱턴 선언’을 계기로 대북 확장억제 강화 조치를 빈틈없이 하겠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 본토와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 무력이 고도화될수록 확장억제의 실효성에 대한 도전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이 고도화할수록 ‘선언은 멀고 주먹(북핵)은 가깝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1992년 미국의 전술핵 철수와 북한의 핵 포기 약속을 맞바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진즉에 사문화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의 임박하고 가공할 핵 공격 위협에도 한국의 핵무장 옵션을 제약하는 ‘불평등 선언’인 만큼 파기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한미가 선언 수준을 넘어서 북한의 핵을 저지할 실질적 조치를 서둘러 강구해야 할 때라고 본다. 북한의 핵 도발에 대응한 한미 간 핵연합작전계획 수립과 유사시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의 대북 사용 선언, 우리 군의 대북 3축 체계와 미 전략사령부의 핵전략 통합 운용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핵 사용에 대비해 핵무기 대응 및 봉쇄에 관한 훈련을 한국 부대에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한국군은 핵 사용 시 한반도 밖 미국의 전문 부대를 기다리기보다 핵 사용 시나리오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기습에 크게 허를 찔린 이스라엘의 사례는 안보의 주적이 ‘방심’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금부터 2020년대 후반까지가 대한민국 안보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안보는 한번 실기하면 되돌릴 수 없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