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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진영]의대 너무 많은데 지역마다 신설하자는 ‘매표 꼼수’

입력 | 2023-10-25 23:45:00

인구·면적 대비 세계 최다 의대 숫자
또 늘리는 건 ‘공항 신설’보다 무책임



이진영 논설위원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의대를 증원한다는 소식에 여기저기서 의대를 신설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정부가 기존의 소규모 의대를 증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도 의대 설립을 요구하는 법안이 16개로 늘어났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역구에 의대를 유치하려고 머리까지 밀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대 설립은 공항 신설보다 더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은 의사 숫자는 적어도 의대는 많다. 인구와 국토 면적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적정 의대 수로 인구 200만∼250만 명당 1개 의대를 권고한다. 이 국제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적정 의대 수는 21∼26개인데 지금은 40개, 한의대를 포함하면 52개다. 의대 1개당 인구가 100만∼130만 명이다. 미국은 의대가 198개로 1개당 167만 명, 일본은 81개로 156만 명이다. 기대수명과 회피가능사망률을 포함해 보건의료 지표가 우리보다 나은 일본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의대는 33개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대가 너무 많다 보니 의대 정원은 너무 적어서 또 문제다. 적정 의대 입학정원은 80∼120명으로 다른 학문 분야보다 많은 편이다. 기초와 임상을 포함해 가르치는 과목이 많아 전임교원만 최소 110명이 필요하고 수련을 위해 부속병원도 있어야 한다. 미국 의대는 평균 입학정원이 153명, 일본은 116명이지만 한국은 77명밖에 안 된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각각 11개)와 김영삼 정부(9개)가 대대적으로 의대를 신설했는데 1985년 이후 13년간 신설된 18개 의대가 한결같이 입학정원이 50명 미만인 미니대학이다. 교육적 고려보다 이곳저곳에 고루 선심 쓴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무상 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은 “영세한 의대가 많다는 건 아주 비싼 비용으로 의사를 양성하거나, 부실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고비용 구조를 감당하기 위해 부속병원을 임상 실습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 운영하고, 이만한 형편도 안 되는 의대는 정상적인 교육은 포기한 채 고시학원처럼 의사 면허시험 준비만 시킨다는 것이다. 관동의대는 부속병원도 없이 개교해 학생들을 이 병원 저 병원 떠돌게 하다가 다른 학원에 인수됐고, 서남의대는 설립자의 비리 문제까지 겹쳐 결국 폐교됐다. 무리한 의대 신설로 정치인들만 재미 보고 부실 교육으로 의대생들과 의료 수요자인 국민들만 피해를 본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의대 신설법안에 따라 의대 설치와 부속병원 설립에 드는 비용을 추산한 결과 8년간 지역에 따라 768억∼3666억 원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국립 의대를 신설할 경우 교직원들 정년까지 월급을 감당하려면 그 이상의 세금 부담이 생겨 ‘혈세 의대’가 되기 쉽다. 설사 돈이 있어도 가르칠 교수가 없는 상황이다. 있던 교수들은 강의에 연구에 환자 진료까지 너무 힘들다며 나가서 개업하고, 젊은 의사들은 워라밸 찾아 개원하지 대학에 남으려 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엔 의사가 과다 배출되고 있다며 2006년 3058명이 될 때까지 줄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16년부터 의사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의대 정원을 늘려도 10년 후엔 다시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가뜩이나 의대가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 더 늘려 놓으면 나중에 정원을 줄이기도 힘들어진다. 의대 증원은 제대로 된 의사를 키워낼 수 있는지 교육 여건을 평가해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 공항은 고추라도 널 수 있지만 의대는 사람 생명이 달린 문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