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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정상화 없인 에너지산업 도약 없다 [기고/주성관]

입력 | 2023-10-12 03:00:00

주성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작년 말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의 출시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뛰어난 검색성능은 물론이고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겼던 창작 분야도 AI가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AI 기술에 대한 글로벌 민간투자가 2025년 16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못지않게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가 또 있다. 바로 에너지 산업이다. 산업의 혈액으로 비유되는 에너지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기존의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원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현재 해상풍력, 태양광, 원전 등 친환경·저탄소 에너지로 전환되고 있고 관련한 다양한 에너지신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 에너지신산업 부문의 글로벌 투자액이 2조 달러까지 증가해 1조 달러인 정보기술(IT) 부문 투자액의 2배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세계 유수의 에너지기업들은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이탈리아 에넬(Enel)이 대표적이다. 에넬은 자회사 에넬X를 통해 가상발전소(VPP), 전력수요반응(DR) 등 에너지신산업을 육성해 해외 18개국에 진출하는 등 글로벌 에너지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협력사들과 해외 시장에 동반 진출해 자국 에너지산업 생태계에도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의 현실은 다르다. 대표 에너지기업 한국전력은 전기요금 정상화가 지연되면서 신산업 투자는커녕 누적 적자 47조 원, 부채는 201조 원에 달해 정상적인 경영조차 힘겨운 상황이다. 수천 개에 달하는 협력사도 한전의 경영 악화로 동반 부실화하고 있어 전력산업 생태계가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산업을 지탱하는 한 축인 전력산업이 무너진다면 국가산업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급등한 연료가격을 반영해 2022년 6월 전기요금을 2021년 1월 대비 107% 인상했다. 에넬이 에너지신산업의 선두 기업으로 도약하고, 산업 생태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원가주의 원칙을 고수한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은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 더없이 큰 기회다. 에너지신산업을 반도체, 배터리 같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투자가 절실하고, 여기에 전기요금 정상화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현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전기요금 원가주의 원칙을 밝히고, 단계적으로 요금을 정상화하고 있다. 다만 그간의 국제 연료가격 상승 수준 등을 볼 때 아직은 부족하고, 최근 유가나 환율 상승 추세를 고려하면 추가적인 요금 정상화는 더욱 시급하다. 늦으면 늦을수록 에너지산업 생태계의 체력은 고갈되고, 신성장동력인 에너지신산업에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원가주의를 내세운 현 정부의 원칙이 지켜지길 기대한다.



주성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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