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와/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은/서로를 서로이게 하는/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천년을 천년이라 생각지도 않고.’(고찬규의 ‘섬’)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되고 육지로부터 단절된 땅. 그래서 어느 시인은 외롭지 않으면 섬이 아니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연평도에서 사계절을 상주하며 해양문화를 조사한 적이 있다. 유소년 시절, 창선도에서 성장했으니 섬 생활에 쉽게 적응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립감을 견디기 위해 매일 저녁 연평도 둘레길을 걸었다. 눈비가 내리지 않는 한 빠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200회 이상 섬 해안길을 완주한 듯하다. 그 시절, 연평도 둘레길은 외로움을 달래는 위안이었다.
길이 없는 섬이 훨씬 많다. 오랜 세월 사람이 걸었던 흔적이 길이므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에는 길이 없다. 바다의 지문은 섬이고, 유인도의 지문은 길이다. 우리 바다에 있는 3382개의 섬 중에서 유인도가 464개, 무인도가 2918개다. 약 150만 명이 섬에 거주한다. 전체 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어업 기지, 영해 확장, 생태계 보고, 군사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요즘은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강 소장은 섬연구소의 모체인 섬학교를 설립한 뒤 10년간 연인원 3000여 명의 회원들과 100개의 섬길을 답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섬연구소 연구원들과 1년간 현장 정밀 재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더한 정보를 업데이트해 백섬백길 사이트를 완성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못한 일을 작은 민간 연구소에서 지원금도 받지 않고 해냈다. 프로젝트가 완료됐다는 소식을 듣고 홈페이지를 열어봤다. 백섬백길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제주올레 이후 전국의 섬들에도 우후죽순처럼 걷기 길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유명해진 극히 일부의 섬길들만 이용될 뿐 대다수 섬길들은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세금으로 만든 길들이 방치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섬연구소에서 섬길을 되살리고 섬들을 활성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백섬백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사이트에는 지도, 코스 정보뿐만 아니라 교통편, 편의시설, 섬의 역사와 문화, 풍속과 설화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백섬백길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 마련된다(9월 19일∼10월 1일). 백섬백길을 알릴 목적으로 기획됐지만, 강 소장이 지난 20년간 섬을 기록한 발자취이기도 하다. 섬 탐색을 평생 업으로 삼은 그의 길이 사진에 담겨 있을 터.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