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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상징에서 다시 생존의 도구로… 선글라스의 기원[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입력 | 2023-08-03 23:39:00


《지구의 심각한 기후변화로 강한 자외선과 더운 여름이 길어지면서 어느덧 선글라스는 우리의 필수품이 되고 있다. 선글라스는 패션의 상징인 동시에 은밀한 의미로도 사용되어서 1980년대까지도 영화나 만화 같은 매체에서 스파이나 악당들은 예외 없이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했던 기억이 있다. 13세기에 광학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안경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등장한 선글라스, 그 뒤에 숨겨진 수만 년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자.》









북극권에서 먼저 제작된 눈가리개

크누드 라스무센이 1920년대에 촬영한 눈가리개를 쓴 에스키모의 모습. 빛의 난반사를 막아 눈을 보호하는 이 가리개는 눈밭에서 장시간 활동할 때 필수품이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시력 교정용 안경은 대체로 12∼13세기 무렵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명되었다. 안경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책이 널리 보급되면서 급격히 확산되었다. 장년층이 나이를 먹으면 작은 글씨를 보기 위한 보조도구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햇빛을 피하는 현대의 선글라스나 고글과 같은 용도의 햇빛 가리개는 그보다 훨씬 빨라서 수천 년 전부터 발견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가장 빠른 햇빛가리개 선글라스 유물은 북극권에서 출토된다. 1950년대에 미국의 알래스카와 베링해를 두고 마주한 러시아 축치 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에크벤이라는 지역에서 무덤이 발굴된 바 있다. 2500년 전부터 만들었던 이 무덤들에서는 바다표범의 상아로 만든 선글라스가 발견되었다. 상아를 깎아서 눈가리개를 만들고 실제 눈으로 보는 부분은 옆으로 쭉 찢어서 눈에 들어가는 햇빛을 최소화하는 식이다.

놀랍게도 이 선글라스는 현재의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알래스카, 캐나다의 북극권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햇빛가리개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 뼈로 만든 선글라스는 그 안쪽에도 숯검댕을 칠해서 빛의 난반사를 막기도 했으니, 바로 눈부신 북극해의 눈밭에서 사냥을 하거나 멀리 볼 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의 사진 자료를 보면 당시 에스키모와 북반구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상아제 선글라스는 지금 보아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는데, 북극권에서 수천 년간 사용하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빙하기 때부터 눈 보호 위해 사용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주립박물관에 전시된 20세기 초 시베리아 원주민 응가나산의 선글라스. 가죽과 청동으로 만들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사피엔스가 번성하던 8만 년 전∼1만2000년 전까지는 혹독한 빙하기였다. 이때 사피엔스는 추위를 견디며 매머드를 사냥하여 생존했다. 빙하기에는 일 년의 대부분이 눈으로 덮여 있어서 강한 태양빛이 난반사되어 시력을 크게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빙하기를 견디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눈밭에서 장시간 활동할 때 시력을 보호하고 멀리 볼 수 있는 도구가 반드시 필요했다. 비록 아직까지 실물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빙하기 시절부터 강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도구가 있었을 것이다.

구석기시대에 눈을 보호하는 도구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석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하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매일 수십 개의 돌을 깨면서 필요한 석기를 만들었다. 돌을 수천 번 휘둘러 깨는 과정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빠르게 튀는 석기 조각에 눈을 다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고고학자가 구석기를 제작하는 실험을 할 때면 반드시 보안경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를 보면 짐승의 마스크 같은 것을 쓴 것이 종종 보이니 아마 지금은 잘 남아 있지 않은 가죽 같은 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추운 빙하기에 적응하면서 신체적인 변화도 이어졌다. 빙하기를 지나면서 사피엔스는 햇빛을 막기 위해 윗눈꺼풀이 두꺼워져서 밑으로 처지는 듯하게 되었다. 전문용어로는 에피칸투스 또는 몽골주름이라고도 한다. 이 에피칸투스가 몽골인들에게 많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몽골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눈이 찢어진 듯 표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종에 관계없이 추운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많다. 이는 인간이 빙하기를 지나 생존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에서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축복과 부활 상징한 종교적 의미도

이집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눈 모양이 들어간 황금 팔찌.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호루스의 눈은 숭배 대상이었다. 사진 출처 투어이집트 홈페이지

추운 기후에 적응하며 발달한 선글라스는 빙하기가 끝나면서 신의 뜻을 전하는 ‘눈빛’으로 바뀐다. 옛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천리안으로 마치 눈에서 광선을 뿜듯이 사방을 비추어서 세계를 평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믿었다. 바로 성스러운 눈빛을 비추는 도구로 선글라스를 만들어 신상에 붙이거나 제사장이 쓰고 의식을 했다. 최근까지도 시베리아의 샤먼들은 의식을 할 때 실제 눈을 감추고 안대를 착용하거나 이마에 써서 신성한 눈빛을 표현했다. 이집트의 파라오 유물 중에도 실제로 눈에 쓰지는 않았지만 팔찌 같은 각종 장식에 눈모양을 달았다. 그리고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호루스의 눈이라고 하여 숭배하기도 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신석기시대인 조몬문화에서 선글라스를 낀 토우(진흙으로 만든 인형)가 종종 발견된다. 특히 일본의 국보로도 지정된 도호쿠 지역에서 발견된 조몬토기는 여성의 체형이고 얼굴에는 커다랗게 선글라스(또는 고글)를 썼다. 그 형태가 특이해서 우주인을 연상시키지만,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모시는 신의 형상이라고 추정한다. 눈에서 나오는 빛을 신성시하고 그를 감추거나 장식하는 풍습은 중국 쓰촨 분지에서 3000년 전에 번성한 청동기시대 문화인 산싱투이에서 특히 많이 보인다. 여기에서는 눈에서 나오는 안광을 강조하거나 마스크 같은 것으로 눈을 장식한 청동 신상이 많이 발견되었다. 실제 박물관에 전시된 이 신상을 직접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찬란함으로 눈빛이 현현하다는 느낌을 준다.

선글라스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저승에서의 복을 의미하기도 했다. 유라시아 일대의 유목민들은 죽은 사람의 눈 위에 황금이나 은으로 만든 선글라스를 만들어 덮어주기도 했다. 북극해의 무덤에서 발견된 선글라스도 나비처럼 생긴 부적과 함께 발견되었으니 무덤에 묻힌 선글라스는 저승에서 길을 잃지 않고 똑바로 천당으로 가라는 의미였다.





지구온난화 시대, 다시 필수품으로

추위를 막고 신령한 힘을 상징하는 선글라스가 패션의 도구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비행기의 발달이 원인이었다. 파일럿은 강한 자외선과 햇빛을 막기 위하여 착색을 한 안경이 필요했고, 모든 사람의 선망을 받으며 선글라스도 널리 퍼졌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 배우들이 자주 쓰고,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며 선글라스는 패션의 도구가 되었다. 1937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2000만 개의 선글라스가 팔릴 정도로 풍요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현대사회에서 선글라스는 패션에서 다시 과거와 같은 생존의 도구로 바뀌는 느낌이다. 급격한 기후의 온난화와 자외선의 증가로 우리에게 선글라스는 멋을 넘어서 생존의 필수 아이템이 되고 있다. 또한 사회가 각박해지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어느덧 서로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선글라스로 자신을 감추고 스스로 고립하려는 용도로 사용하는 예가 많아지는 것같다. 하루하루 참기 어려운 더위가 지속되는 요즘이다. 선글라스가 다시 자신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도구로 계속 사용되길 바란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