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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 식 못올리는 부부 없길”…아버지 ‘흔적’을 이어가는 아들 [따만사]

입력 | 2023-08-10 12:00:00


스냅 촬영을 진행하는 신신예식장 백남문 대표.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지난달 15일 턱시도를 입은 신랑 박병연 씨와 드레스를 입은 신부 백숙이 씨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여러사정으로 지난 30년동안 미루고 미루던 결혼식을 진행한 부부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신랑 박 씨는 이번 결혼식을 위해 2년을 기다렸다. 그는 “신신예식장 故(고) 백낙삼 대표님께 2년전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는데 갑자기 대표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박 씨는 혹시나 미루던 결혼식을 못하진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2년을 기다린 끝에 이날 신신예식장 2대 대표이자 백낙삼 대표의 아들인 백남문 대표의 진행하에 결혼식을 올리고 사진을 촬영하게 됐다.

“자 찍습니다. 김치~치즈~꽁치~이히히. 웃으세요.” 부부가 포즈를 취하자 백 대표는 미소를 유도했다. 플래시가 터진 이 순간을 부부는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일 돕다보니 사진에 관심
백 대표는 “아버지가 예식장을 운영하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집안에는 카메라가 많이 굴려다녔다. 어린 나이에 이 카메라 저 카메라를 만지다 보니 어느새 사진에 관심이 생겼다”며 “대학에서도 사진을 전공하게 됐다”고 했다.

백 대표는 사진을 본업으로 삼으면서 아버지의 신신예식장과의 인연이 더 깊어졌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예식장 일이 정말 바쁠 때 가서 사진사 역할을 했다”며 “그 당시 사진은 지금처럼 포토샵이나 이런 프로그램들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현상도 수정도 일일이 손으로 다했고 시간도 많이 걸려 할 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예식장이 바쁠 때는 아버지 일을 도와 사진사를 하면서도 꿈을 위해 자신만의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하지만 젊을 때는 많은 일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버지, 우리도 돈 많이 받아요” 말했지만...
백 대표는 아버지가 80년대에 예식장을 운영하면서 다른 예식장들과는 다르게 최소한의 금액만을 받는 것을 이해 못 했다.

백 대표는 “당시 창원에 이런 예식장이 3~4곳이 더 있었다. 모두 우리의 5배, 많게는 10배까지 받아 가면서 예식 영업을 했다”며 “아버지가 받는 비용이 적다고 느낀 적이 많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우리도 다른 예식장들처럼 돈을 받아보자”며 “그래야 우리도 재산을 늘리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럴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기쁘게 우리 예식장을 찾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예식장이 아니다”라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백 대표는 최소한의 비용을 받는 아버지를 계속 봤지만 그렇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결혼식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는 아버지를 정말 이해 못 했지만 제가 나이가 들고 우리 예식장에서 결혼을 한 분들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신신예식장 故(고) 백낙삼 대표와 백남문 대표의 생전 찍은 사진. 백남문 대표 제공



아버지 뒤를 이어 2대 대표가 되다
백 대표는 아버지가 쓰러졌을 당시 모든게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2022년 4월 28일에 쓰러지셨는데 그때부터는 저의 본업과 예식장 일도 같이 병행했다”며 “일을 병행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안됐고 너무 힘들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했는데 본업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정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는 평소 백 대표에게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 너가 안하면 누가 하냐”고 말하곤 했다.

백 대표는 “꼭 강요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셨다. 늘 밥먹듯이 귀에 못박힌 이야기였다”며 “아버지가 건강하실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너무 건강하셔서 미리 대책을 세우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시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떠올렸다.

그때부터 백 대표는 아버지가 하셨던 말에 무게감을 느끼고 진지한 자세로 예식장 운영에 임했다고 한다.

신신예식장 백남문 대표. 백남문 대표 제공


지역사회 도움 덕에 예식장 유지
예식장 건물은 기존에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말끔한 모습이었다. 지역사회에서 도와준 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예식장 건물 외장과 일부가 최근 말끔히 보수가 됐다”며 “지역사회에서 우리 예식장의 취지를 잘 알고 있어서 외부 페인트칠도 다 해주시고 샤시같은것도 말끔하게 다 갈아줬다”고 설명했다.

백 대표는 “지금 예식장일을 도와주시는 분들 특히 신부 측 헬퍼 역할을 하는 저희 누나, 주례 선생님, 그리고 미용실 원장님께도 많은 양해를 구하고 있다”며 “드레스 관리를 하거나 현상소에서 사진을 뽑으면 돈이 들어가다 보니 인건비를 많이 못 드린다. 그런데도 이렇게 도와주시니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백 대표는 특히 평생 신부 측 헬퍼로서 아버지를 보조하고 지금도 드레스와 한복 그리고 소품 등을 관리하면서 예식장을 운영해 온 어머니인 최필순 여사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님이 정말 헌신적이셨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저한테도 희생적으로 살아오셨고 힘들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다”며 “예식장에도 한평생 헌신적으로 일을 해오셨고 끊임없이 희생만 하신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항상 그늘을 제공해주시는 거목 같고 지금도 제가 쓸데없는 투정을 할 때도 어머니는 늘 너그럽게 받아주신다”고 말했다.

신부측 헬퍼역할과 예식장 물품을 총괄하고 있는 최필순 여사.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물가 올라도 돈 더 받을 수 없는 이유…
55년간 신신예식장을 찾는 주 고객들은 법적으로 부부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4~60대 연령대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예식장에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가면 모두 웃으면서 나가지만, 그중 안타까운 사연은 항상 있다고 백 대표는 말한다.

백 대표는 “얼마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여성분이 찾아왔다”며 “그분은 남편하고 살면서 경제적 이유로 결혼식 드레스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고 ‘혼자라도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며 우리 예식장을 찾아주셨다”고 전했다.

여성은 남편이 세상을 등진 뒤 홀로 있다가 저렴한 예식을 할 수 있다는 신신예식장 이야기를 듣고 오게 됐다고 한다. 사정을 들은 백 대표는 여성분에게 메이크업을 하고 드레스를 입혀 웨딩 사진을 찍었다. 여성은 “여기를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남편 보는 앞에서 드레스를 입어봤어야 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백 대표는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물가가 올라도 제가 더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신랑 신부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 우리 예식장의 존재가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식장 운영하기 위해 또 다른 부업
백 대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예식이 많이 줄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쌍 결혼식을 올리고 성수기에도 예전처럼 많은 결혼식을 하지는 않는다”며 “건물이 자체 소유지만, 결혼식을 하고 촬영만 하면 20만 원, 앨범까지 다 제작을 하면 70만 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신신예식장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부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신신예식장을 문 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저희 예식장이 없으면 결혼식을 못 올리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항상 열어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이 저희 예식장에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실망을 시켜드리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15일 신신예식장에서 예식을 올린 박병연 씨와 백숙이 씨.



“돈 없어 뭔가를 못하는 건 슬픈 일”
백 대표는 신신예식장을 아버지의 흔적이라고 표현했다. 이곳에서 1만 4000 쌍의 부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추억을 만든 게 모두 아버지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흔적을 백 대표도 이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백 대표는 “돈이 없어서 뭔가를 못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이 요즘 상황이다”이라며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식을 올리고 싶은데 비용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못 입고 가시는 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돈이 없어 결혼식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면 형편에 맞춰 결혼식을 올려드릴 테니 꼭 신신예식장에 연락을 해달라”며 “아버지께서도 간혹 생활보호대상자 같은 경우에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혀서 사진을 찍어드렸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없어서 결혼식 못한다는 경우는 없는게 제 소망이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