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통해 폐지 가능하지만 현실성은 희박 국회법 개정 통한 특권 약화 의견이 많아 서약은 ‘정치 달라져야 한다’ 요구에 대한 응답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서약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올해 들어 더불어민주당이 자기 당 소속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연속해 부결시킴으로써 비난 여론에 직면해 있는 터에,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제1혁신안으로 폐지 서약을 제시했으나 의원들이 수용을 미루고 있는 모양새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이 서둘러 폐지 서약을 단행하고 민주당도 동참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압박하고 있는 형색이 만들어졌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유서가 깊은 제도다. 의회민주주의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의회정치의 시조인 영국이 1603년 의회특권법을 명문화한 이후 민주정치체제를 표방하는 세계 각국이 헌법으로 수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취지는 국가(행정·사법) 권력으로부터 의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폐지 운운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치권은 폐지하겠다는 공언을 심심치 않게 해왔다. 2012년 19대 국회에서도 여야(당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가 공히 폐지를 선언한 바 있다. 여야 공동까지는 아니어도, 정치개혁안으로 이런저런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폐지를 약속해 왔다.
영국에서의 폐지 권고는 약화를 위한 압박의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고, 프랑스에서의 헌법 개정은 폐지를 거론하지는 않는 가운데, 요구의 내용적 특징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 정치권이 폐지를 시도하거나 그에 대한 약속을 한국처럼 빈번하게 혹은 주도적으로 논의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나라와 달리 한국의 정치권이 유독 먼저 나서서 폐지를 공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하건대, 다수가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일 것이다. 그래서 폐지 서약을 하면 지지를 회복하거나 올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 2월 말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57%가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유지는 27%, 유보는 16%).
한국의 경우 불체포특권 폐지를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폐지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폐지론자마저 포함한 다수의 정치와 법 전문가들이 국회법 등의 개정을 통해 약화 혹은 합리화하는 게 타당하다고 권고해 왔다. 개헌도 정치권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의제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아마도 “개헌을 통해 실제 폐지가 가능하겠냐”고 물으면 긍정적 응답이 다수일지 의문이다.
다수가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이 조성된 이유는 툭하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정치권을 미워하고 야단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민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고, 그 헌법적 절차에 기대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국민이 개헌을 통한 불체포특권 폐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또 정치권의 폐지 서약이 실제 개헌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리도 없다. 폐지 서약 여부는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요청에 성심껏 반응하느냐를 판단할 지표일 따름이다. 그래서 폐지 반대-개정론자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