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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정은]“모디 총리에 레드 카펫을… ” 印 향한 美의 구애

입력 | 2023-06-23 23:51:00


“그때 나는 할 수 없었으나 당신은 반복해서 물었던 것, 그렇게 열망했던 바람을 오늘 제가 채워드리죠.” 22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내놓은 발언에 만찬장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9년 전 워싱턴 방문 땐 힌두교 금식 기간이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이번 만찬에서는 기꺼이 포식하겠다는 뜻의 농담이었다. 인도산 실크 위에 오른 사프란 리소토와 포토벨로 버섯 요리는 채식주의자인 그를 위해 백악관이 특별히 공들인 메뉴였다.

▷제3세계 국가들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는 비동맹 외교 정책을 고수해온 나라다. 쿼드(Quad) 회원국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적극 올라타면서도 러시아로부터는 싼값에 원유를 4배 넘게 사들이며 미국의 대(對)러 제재망에 구멍을 뚫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깰 수 없는 우정”을 강조했다. 이런 인도를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은 모디 총리를 국빈으로 초청해 초특급으로 환대했다.

▷미국과 인도를 ‘베프’ 관계로 만든 공통분모는 중국이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 등으로 잔뜩 날이 서 있는 인도, 중국 견제를 위해 우군이 필요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양국이 협력 강화를 다짐한 분야는 인공지능(AI) 개발과 글로벌 공급망 확보, 방산 등 첨단 기술과 안보다. 미국이 대중 견제의 고삐를 죄는 분야들이다. 중국에서 제재받은 마이크론은 인도에 8억 달러 넘게 투자한다. 양국 정부와 기업 모두 중국 보란 듯 밀착하고 있는 것이다. CNN은 모디 총리의 국빈 방문 기간에 “(중국이라는) 초대받지 않은 유령 손님이 워싱턴을 맴돌았다”고 썼다.

▷“두 위대한 국가, 두 위대한 친구, 두 위대한 파워를 위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국빈만찬 건배사는 의미심장하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렸던 미중 관계 대신 인도와 손잡고 세계질서를 재편해 나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인도가 어디까지 호응할지가 관건이지만, 이번 회담만으로도 기존의 지정학 구도를 흔들 “역사를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이를 위해 인도의 인권 탄압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모디 총리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민주주의 국가 간의 연대”를 외쳤다.

▷14억 인구를 둔 세계 최대 시장, 첨단기술 수준과 젊은 정보기술(IT) 인력들, 6%대 경제성장률을 이끄는 중산층 파워로 인도의 몸값은 한껏 높아져 있기도 하다. 미중 갈등 속에서의 ‘어부지리’ 수혜로 신흥 거대 시장 인도의 성장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칙과 국익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주요국들의 합종연횡이 끌어내는 변화 속도가 숨 가쁘다. 대외적 역할 확대와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노리는 한국이 놓치지 말고 따라가야 할 흐름임이 분명하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