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총선 앞둔 여야 인물난…해외 지도자는 어떻게 성장하나[윤다빈의 세계 속 K정치]

입력 | 2023-06-09 14:00:00


한국 정치의 수준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를 각각 두 번씩 취재하며 가졌던 의문입니다. 닫힌 섬과 같은 여의도만 보고선 해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시야를 넓혀 세계 각국의 정치 현실을 살펴보고 한국 정치와 신랄하게 비교하겠습니다. 때로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때로는 우리 정치의 품격을 높일 해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언젠간 K팝, K드라마, K푸드처럼 K정치도 호평받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22대 총선이 이제 10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여야 정당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내놓을 것입니다. 이 중 가장 핵심은 인적 쇄신입니다.

여야 극단적 지지층을 제외한 일반 유권자 사이에서 정치 혐오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자연히 선거 때마다 물갈이에 대한 요구는 높습니다.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당의 외연을 넓히는 쪽이 선거에 유리해집니다. 벌써 각 당마다 물갈이 비율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거나 외부 인사가 영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하지만 늘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지만 왜 성공 사례를 찾기 힘들까요? 해외에서는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는 지도자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는데 말이죠.





● 국민의힘은 적자생존, 민주당은 스토리텔링
국민의힘은 적자생존 구도에서 자기 능력으로 성장해야 하는 정당입니다. 이준석 대표 시절 능력주의와 공정 경쟁을 화두로 진행한 당 대변인 선발 공개 오디션 ‘나는 국대다(나는 국민의힘 대변인이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도 지난달 말 청년 공개 정책 오디션 ‘청년 ON다’를 통해 정책위원회 청년부의장을 선발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은 자신의 힘으로 입문했기에 낙하산 논란이 적고 비교적 독립적인 정치 활동이 가능합니다. 누군가 정치권 진입 과정에서 연줄을 이용하더라도 내부자가 되는 순간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존버(최대한 버티기)’하면서 정치적 주목도를 높여야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에 놓인 2030 세대 중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직업 정치인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난해 3월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가 열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능력주의를 표방하며 공개경쟁을 통한 인재 영입을 주로 시도해왔다. 뉴스1


물론 국민의힘도 영입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총선에서도 탈북자 출신 태영호・지성호 의원 등이 영입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 씨 등 당의 조력을 받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많은 이들이 사라졌죠.

더불어민주당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람을 영입해 키웁니다. 여성·장애인·청년 등 정치권에 부족한 인재를 영입하는 데 공들이는 편입니다. 총선 때마다 꾸준히 외부 인사를 영입해 마케팅을 펼칩니다. 21대 총선 때도 소방관 출신 오영환 의원을 비롯해 장애인 재활전문가 최혜영 의원, 세계은행 최지은 이코노미스트 등을 영입했습니다. 대선 때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최초로 추적해 세상에 알린 대학생 활동가 출신 박지현 씨를 데려왔습니다.

민주당은 보통 선거를 앞두고 영입할 인재에 대해 콘셉트를 정한 뒤 소속 의원의 추천을 받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후보군을 정합니다. 이후 대상자들과 비밀리에 접촉합니다. 입당이 확정되면 당사자에게도 철저한 보안을 당부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깜짝 공개하면서 극적 효과를 높입니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2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청년 인재들이 포함된 1∼10호 영입 인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이야기가 있는 인물을 발굴해 당 이미지를 개선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동아일보 DB


민주당에서는 성장보다 ‘영입’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자신을 발탁한 정치인과 계보에 충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데려다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의도 적응부터 총선 공천까지 계보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단기간에 스스로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서 유능한 정치인이 탄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지난 총선에서 영입된 민주당 정치인들은 상식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특정 계파의 확성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당을 쥐고 흔드는 극렬 지지층의 눈에 들기 위해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는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결국 ‘누굴 데려다 놔도 똑같다’라는 인식만 강해지면서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를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 마크롱・피타는 어떻게 지도자가 됐나
요즘 급부상 중인 해외 유력 정치인의 입문 경로는 K정치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고학력 엘리트 출신으로 경제 분야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정치 운동에 뛰어든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달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제1당으로 올라서며 돌풍을 일으킨 전진당의 피타 림짜른랏 대표(43)는 대표적인 기업인 출신 엘리트 정치인입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공공정책 석사,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쌀겨기름 회사를 운영했고, 동남아시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 태국지사에서 전무이사로 일했습니다.

그는 2019년 자신의 대학 동문이 만든 신미래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신미래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전진당으로 재탄생시킨 뒤 왕실 모독죄·징병제 폐지 등 파격적인 공약을 앞세워 총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태국 총선에서 제1당에 오른 전진당 피타 림짜른랏 대표가 수도 방콕의 당사에서 지지자의 열띤 축하를 받고 있다. 동남아시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의 태국지사 전무이사 출신인 피타 대표는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방콕=AP 뉴시스


전 국민적 저항을 뚫고 연금 개혁을 완수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6)도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의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 최고 명문대인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재무부 산하의 금융조사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부 부처를 떠나 투자은행 로쉴트에 입사했습니다. 상무이사로 승진한 그는 프랑스 최고의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금융의 모차르트’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들어서자 공직으로 돌아와 30대의 나이로 비서실 부실장과 경제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이 당시 경제 활성화와 고용 촉진을 위해 대규모 규제 완화 패키지인 일명 ‘마크롱 법’을 통과시키면서 좌파 정부에서 우클릭했다는 지지자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2016년 장관직에서 물러나 스스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면서 청년과 함께 사회운동 단체 ‘앙 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를 이끌고 정치 세력화에 나섰고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정계에 입문해 차근차근 정치적 경력을 쌓은 뒤 지도자 반열에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도 있습니다.

역대 세계 최연소 여성 정부 수반인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39)는 대학생 때 좌파 사회민주당에 입당했습니다. 23살 때 처음 시의원에 출마해 4년 뒤인 27살에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선출직 정치인이 됐습니다. 2015년엔 국회의원, 2017년엔 사민당 부주석이 됐고, 교통부 장관을 거쳐 34살에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한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오른쪽)가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수도 키이우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마린 총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대학생 때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해 정치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키이우=AP 뉴시스


오스트리아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37)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우파 국민당에서 활동하다 23살에 당 청년 대표로 당선됐습니다. 24살에는 빈 시의회 의원이 됐고, 27살의 나이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31세에 첫 총리가 됐고 2019년 재집권에 성공했습니다.

끝으로 소위 ‘정치 명문가’에서 성장한 2, 3세 정치인도 있습니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52)는 캐나다의 거물 정치인 중 한 명이었던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장남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66)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국회의원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죠.

이들은 어릴 적부터 상류층과 교류하면서 정치적 감각을 익혔습니다. 정치 입문에 필요한 돈과 인적 네트워크도 비교적 쉽게 획득했습니다. 세습 정치에 대한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긴 하지만 정치 명문가 출신의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수월하게 정계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 소신 행보 막는 ‘K정치의 벽’
새 인물에 목마른 K정치에서 이런 방식으로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피타 대표, 마크롱 대통령처럼 외부에서 뚜렷한 성공 사례를 남긴 경제인은 정치를 안 한다고 손사래 칠 확률이 높습니다. 10여년 전 K정치에서도 안랩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지만 기성 질서를 바꾸는 데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정치인이 되면 어느 정도의 수모를 겪는지를 확인시켜줬습니다. 함부로 정치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학습효과가 생겨났습니다.

점차 극단화되는 정치 환경 속에서 평소 사회적 존경을 받는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라도 정치권에 입문하는 순간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려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인재 영입 과정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영입을 위해 접촉해보면 당사자는 관심을 두더라도 가족이나 주변에서 강하게 막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 CEO 등 영입 1순위 인재들도 자기 기업에 미칠 정치적 후폭풍을 우려해 고사하는 게 다수”라고 했습니다.

당내 인재 육성 과정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K정치에서 지방의원, 보좌관, 당직자에서 시작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국회의원 시점에서 보면 보좌관, 당직자는 단순 참모일 뿐이다. 이들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며 “정치 신인이 지방의회에서 차근차근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지방의원으로 출발하면 처음부터 급이 낮은 인물로 낙인찍혀 중앙무대 진출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당내에서 소신 있는 활동을 펼친 인재들은 강성 지지층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기 논란’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던 민주당 양소영 전국대학생위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극렬 지지층에게 문자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 게시판에는 대학생위원장의 직위해제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당내 일부 청년·대학생 권리당원까지 나서 양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11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화상 연설이 열린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런 구조 속에서는 강성 지지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윗사람의 말을 잘 듣고 줄을 서는 이들이 선택받는 것입니다. 해외처럼 본인의 성공을 바탕으로 정치권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너무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여야에서 가장 뛰어난 확장성을 보여줬던 이준석 전 대표와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대선 이후 어떤 정치적 곤경을 겪었고,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올 것 같습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