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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 더 고립된 ‘고위기 청소년’… 직접 찾아가 상담한다

입력 | 2023-05-04 03:00:00

여가부, 청소년 정신건강 집중지원
우울-불안 호소 청소년 급증…전국 240곳 심리클리닉 운영
은둔형 청소년 밖으로 나오도록… 전문가가 방문해 맞춤형 상담
극단적 선택-자해 예방 강화



게티이미지코리아


어질러진 침대와 쓰레기 봉투가 나뒹구는 바닥.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A 군(18)은 학교도 가지 않고 게임과 스마트폰에만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경기 지역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사는 3월 A 군을 처음 만난 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어머니의 신청으로 상담을 시작했으나 좀처럼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일명 ‘은둔형 청소년’이었던 A 군은 여러 차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그런데 어떻게,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의 사망 이후 심한 우울감에 시달려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방 안에 스스로를 가뒀던 A 군. 상담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역 내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구체적인 진로계획도 세웠다. 어머니, 동생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개선됐다. 그렇게 A 군은 느리지만 서서히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

● 코로나19로 청소년 정신건강 ‘빨간불’
A 군처럼 마음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원이 시급한 청소년들을 ‘고위기 청소년’이라고 한다. 은둔형 청소년, 학교폭력 피해 청소년, 극단적 선택 및 자해의 위험이 있는 청소년 등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A 군 같은 고위기 청소년이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로 학교, 복지관 등 외부와 단절되면서 청소년들의 마음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 상담 건수는 2018년 약 15만 건이었지만 2021년에는 약 20만5000건으로 늘었다.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청소년도 코로나19 전후로 크게 늘었다. 10대 우울증 환자 수는 2018년 4만3029명에서 2021년 5만7587명으로 증가했다. 10대 불안장애 환자 수는 같은 기간 2만1489명에서 3만1701명으로 늘었다. 여가부가 고위기 청소년 지원에 힘을 쏟는 배경이다.

● ‘고위기 청소년’ 발굴-지원-예방 체계 구축
여가부는 코로나19로 악화된 마음건강이 제때 치유받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에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고위기 청소년을 조기에 발굴해 지원하고, 예방하는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먼저 3월부터 전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240곳에서 ‘고위기 집중 심리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부산에 사는 B 양(18)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집중 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B 양은 부모님의 이혼, 잦은 이사와 전학,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 우울증과 공황장애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센터에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교육비를 지원받으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고 학업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청소년이 청소년을 돕는 ‘또래상담 사업’도 확대된다. 또래상담 사업이란 상담 훈련을 받은 청소년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래의 고민이나 문제 해결을 돕는 것이다. 기존에는 주로 초중고교의 재학생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들도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 극단적 선택과 자해 예방을 중심으로 하는 고위기 청소년 지원 강화 방안을 마련해 이를 현장에서 적용하고 있다. 여가부의 ‘2022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조사 기준 극단적 선택은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 연령에 해당하는 9∼24세의 사망 원인 1위다.

그중 하나가 ‘사이버 아웃리치’ 서비스다. 사이버 아웃리치란 전문 상담사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고위기 청소년이 올린 글을 발견해 직접 접촉해서 지원하는 활동이다. 한 상담사는 18세 청소년이 “오랜만에 자해를 했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고 ‘돕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청소년을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안내해 대면 상담을 받게 했다.

● 마음건강지킴이 버스 도입
지난달 19일 여가부는 대한상공회의소 신기업가정신협의회와 함께 ‘제2차 다함께 나눔프로젝트’ 행사를 열고 코로나19 이후 악화된 청소년들의 마음건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신기업가정신협의회는 기업의 기술과 문화, 아이디어 등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해법을 제시하기 위한 기업들의 모임이다. 이날 SK그룹, 신한은행, 이디야커피 등이 총 23억 원을 기부했다.

이 후원금 중 일부는 ‘청소년 마음건강 지킴이 버스’ 5대를 운영하는 데 쓰인다. 청소년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이 버스를 타고 마음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소년을 직접 찾아가 맞춤형 상담 등을 진행하게 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도서 벽지 등 지리적 한계와 교통 여건으로 상담을 받기 어려웠던 청소년들의 상담 접근성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