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고래’ 부커상 후보 뒷얘기 美 문학 에이전트 팰커너 “창조적 이야기에 마음 흔들려”… 작가 수차례 설득해 계약 따내 변호사 출신 번역가 김지영 원작 유머 가다듬는데 공들여… “번역하다가 혼자서 낄낄 웃어”
“장편소설 ‘고래’(2004년·문학동네)는 내가 읽은 소설 중 최고다. ‘고래’를 세계에 소개하겠으니 믿고 맡겨 달라.”
문학 에이전트 켈리 팰커너 씨.
“해외 에이전시가 한국 소설을 번역하려고 덤벼드는 게 이상하기도 했는데, 그냥 얼떨결에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해외에 책을 잘 소개하더라고요.”(천 작가)
팰커너는 남편과 함께 아시아 문학을 영미권에 소개하는 ‘아시아 문학 에이전시’를 운영한다. 천 작가를 비롯해 배수아 한유주 김이설 등 한국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박색이라 신혼 첫날 소박 맞고 복수심을 지닌 노파, 집에서 도망쳐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금복, 말 못 하는 춘희까지 여성 세 명의 거친 삶을 그린 ‘고래’에 팰커너는 왜 빠졌을까. 팰커너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장난스러우면서도 창조적인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흔들렸다. ‘고래’는 현대 문학의 걸작”이라고 예찬했다.
“전 ‘고래’의 유머 감각과 독특함이 너무 좋아요. 부커상이 ‘고래’에 주목한 것도 이런 소설은 세상에 없고,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덮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팰커너)
번역가 김지영 씨.
김 번역가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고래’ 특유의 구수함과 유머, 한국 근대 역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전개시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며 번역을 수락한 계기를 설명했다.
김 번역가가 번역에 가장 유의한 건 유머다. 그는 “유머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자칫 건조하게 번역될 수 있다. 원고를 다듬으면서 계속 검토했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쓰면 더 웃긴가, 아니면 저렇게 쓰면 더 웃긴가 고민을 많이 했다. 문체가 너무 웃겨서 컴퓨터 앞에서 혼자 낄낄 웃을 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인물 이름 번역에도 신경 썼다. 등장 인물 ‘칼자국’은 직역이 아니라 ‘흉터 있는 남자(The man with the scar)’로 번역했다. ‘춘희(春姬)’는 발음과 뜻을 함께 써서 ‘CHUNHUI-or Girl of Spring-’이라고 썼다.
부커상 수상자는 다음 달 23일(현지 시간) 영국에서 발표한다. 세 명은 어떤 마음일까.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팰커너)
“결과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봐야죠.”(천 작가)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