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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정부의 공공요금 통제와 금리개입, 반복되면 심각한 부작용”

입력 | 2023-04-24 03:00:00

53대 한국경제학회장
황윤재 서울대 석좌교수



황윤재 한국경제학회장이 6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황 교수는 막대한 무역적자와 가계·정부 부채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단기적 위협으로 꼽았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정부의 가격 통제나 금리 개입은 한시적이어야 합니다. 자꾸 반복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올해 2월 53대 한국경제학회장에 취임한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전기요금 등 가격 통제와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대해 언급하며 당국의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상황이 긴급한 경우 ‘비상용 카드’로 쓸 수는 있어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개입은 반드시 시장 왜곡 같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노동시장 개혁과 유연화가 필요하다”면서 한국 경제 최대 리스크로 1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무역적자와 가계·정부 부채, 고령화 등을 꼽았다. 또 최근 금융 부문의 위기에 대해서는 “비은행 금융기관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위험이 커져 경제의 뇌관이 됐다”면서 “PF 위기는 레고랜드 사태처럼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황 교수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계량경제학자로 꼽힌다. 이달 초 그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

“단기적으로는 13개월째 이어지는 무역적자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중심으로 수출이 많이 감소하고 있다. 또 가계부채 측면으로는 자영업자의 채무 상환 능력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 고금리 와중에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높아서 이것이 우리 경제 운용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 부채 역시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때문에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같은 비(非)기축통화국은 재정 건전성 악화가 거시경제 안정성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무역적자 행진이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인데,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봐야 하나.

“물론 지금은 금융기관이나 정부 재정이 비교적 건전하기 때문에 무역적자가 이어진다고 해서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재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나중에 세계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서 적자가 줄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세계화 시대에는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우리가 수출하며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정학적 위기로 세계가 분절화되고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는 경기가 좋아진다고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고령화로 생산연령 인구가 급감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잠재성장률은 앞으로도 계속 하락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예측에 의하면 노동 공급의 감소로 2050년에는 성장률이 0.5%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 위기에 대처하려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노동시장 개혁과 유연화가 필요하다. 또 대학 규제 완화 등 교육 혁신을 해야 하고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이민 정책을 통해 고숙련, 고학력 인구도 적극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물가 흐름은 어떻게 보나. 현재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인가.

“기준금리를 올려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 물가 오르는 속도는 낮아지는 추세다.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둔화되고 경제성장률이 내려가는 상황이라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경기침체 국면에 가깝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은 큰 부실이 없었는데도 유동성 문제나 시장의 공포심리로 인해 파산했다. 한국 금융회사들도 이런 위험이 있나.

“현재 비은행 금융기관 중심으로 부동산 관련 대출(PF)의 상환 위험이 커지며 뇌관이 되고 있다. 이런 곳의 재무 건전성에 의심이 생길 경우 미국처럼 모바일 뱅킹을 통해 예금보호한도 초과 부문은 신속한 예금 인출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관련 대출은 채권, 주식 등 자본시장과 연계성이 높아서 지난 레고랜드 사태처럼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 또 전기료 인상이 계속 연기되면 한전채 발행이 늘어나 회사채 시장의 자금이 경색될 우려도 있다. 다만 이런 게 전반적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겠다며 당국이 추진하는 각종 방안은 어떻게 보나.

“서민이 어려우니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차원에서 나온 듯한데 은행 산업의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 자체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소규모 은행의 진입이 시중은행 과점 체제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예대금리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하고 정부는 자본시장 경색 같은 시장의 실패가 나타났을 때만 개입할 수 있다. 개입은 선별적이고 단기적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본시장의 왜곡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와도 상충할 수 있다.”

―KT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서 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의 인사 개입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고 그 결과 전문적이고 유능한 경영진이 구성돼 기업 성과를 높인다면 그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인사 개입이 관례적으로 이뤄지고 CEO 선임의 투명성에 문제가 생긴다면 경영 효율성이 저하되고 주주도 손해를 볼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된 기업 경영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

―정부의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구조 개혁 추진 의지는 어떻게 보나.

“개혁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것을 추진할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도 내년 총선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완전하게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부에서 시작의 단추는 끼워야 한다. 장단기 목표를 명확히 나눠서 최소한 할 수 있는 것, 최대공약수를 먼저 찾아서 그것부터라도 지금 해야 한다. 정확한 통계와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게 있나.

“가령 노동 개혁의 경우 고용이나 근로시간 유연화는 어려울지 몰라도 호봉제를 성과급제로 바꾸는 임금 개혁은 비교적 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연금 개혁도 직역연금 통합 같은 구조 개혁은 장기 과제일지 몰라도 보험료율 인상 같은 모수 개혁은 어느 정도 합의가 되고 있으니 이런 논의는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부의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나 생필품 가격 통제는 어떻게 보나.

“가격 통제는 인플레이션이 급속히 악화될 경우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도 있다. 시장 실패가 있다면 적절한 개입이 있어야 한다. 다만 가격 통제는 한시적이어야 하고 통제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가격 왜곡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가격 통제 논란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원가 상승 요인을 정기적으로 심사하고 이를 공공요금에 반영하는 독립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공공요금 가격을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정부가) 무시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미래를 대비해 한국의 산업 구조는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하나.

“높은 대외의존도를 감안했을 때 무역 품목이나 대상국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은 한국에 큰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탈세계화 추세 속에서는 무역 대상국을 다변화하고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을 보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력 산업도 반도체 등 일부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이래서 기초과학 육성이 중요하다. 기초과학 역량이 있으면 산업 지형이 갑자기 바뀌어도 이에 대응하고 따라가는 게 가능하다. 미국도 기초과학이 튼튼하니까 팬데믹이 터지자마자 새로운 백신을 바로 만들어내지 않았나.”

―향후 5∼10년 뒤 글로벌 경제 향방은 어떻게 될까.

“미중 갈등과 세계 경제의 분절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과거 세계화 시대 교역을 통해 가능했던 저물가 시대로 복귀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 같다. 각국의 기술 장벽이 형성되고 세계 경제 효율성도 상당히 저하될 것이다. 한국은 압도적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이런 환경에서 창출될 수 있는 시장 공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두 거대 진영과 안보 면에서 대립하지 않고 활발한 경제적 교류가 가능한 시장, 특히 아세안 국가들을 무역 파트너로 개척할 필요가 있다.”




황윤재 교수 약력△1960년생
△19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1년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2003∼2005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05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0년 서울대 석좌교수 임명
△2023년 53대 한국경제학회장 취임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