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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 같은 추잡한 질문 말라” 화낸 미국 대통령[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입력 | 2023-04-22 12:00:00

최고 권력자의 섹스 스캔들은 유죄? 무죄?
대통령의 각양각색 성추문 대처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막음 의혹의 당사자인 전직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오른쪽)가 트럼프 대통령 기소 후 처음으로 언론과 등장해 영국 언론인 피어스 모건과 인터뷰하는 모습. 토크TV 캡처






The king has been dethroned.”
(왕은 권좌에서 밀려났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법정에 섰습니다. 두 차례 탄핵 위기를 넘기는 등 재임 시절을 파란만장하게 보내더니 퇴임해서도 여전히 논란을 몰고 다닙니다. 이번에는 2016년 대선 직전 스토미 대니얼스라는 전직 성인영화 배우의 혼외정사 폭로를 막기 위해 13만 달러(1억7000만 원)에 달하는 뒷돈을 전달하고, 이를 회사 장부에 ‘법률 자문 비용’으로 허위로 기재한 혐의입니다.

대니얼스는 트럼프 대통령 기소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겨난 왕’에 비유했습니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에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입니다. 미드 제목 ‘Game of Thrones’에도 나오듯 ‘throne’은 왕좌, 왕이 앉은 의자를 말합니다. ‘de’는 반대의 의미이므로 ‘dethrone’(디쓰론)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뜻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소된 혐의는 문서 위조이지만 사건의 출발점은 섹스 스캔들입니다. 권력자의 성추문은 지대한 관심을 받기 마련입니다. “porn star”(포르노 스타), “adult film”(성인영화), “playboy model”(플레이보이 모델) 등 평소 보기 힘든 단어들이 요즘처럼 자주 미국 언론에서 등장한 적도 없습니다. 유명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가운데)과 제니퍼 피츠제럴드(오른쪽). 뒤쪽에 바버라 부시 여사(왼쪽)가 앉아있다. 위키피디아


You are perpetuating the sleaze by even asking the question.”
(그런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추잡한 소문을 영구화시키게 된다)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부인 바버라 여사와 73년 동안 모범적인 결혼생활 보냈습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에게는 제니퍼 피츠제럴드라는 개인 비서와 수십 년간 연인관계였다는 소문이 따라다녔습니다.

1973년 부시 대통령이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 시절에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중앙정보국(CIA) 국장, 부통령, 대통령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5년 나란히 앉아있는 부시 대통령과 피츠제럴드 뒤쪽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바버라 여사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습니다. 2019년 발간된 자서전에서 바버라 여사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우울증의 상당 부분은 부시 대통령과 피츠제럴드의 관계 때문이라고 바버라 여사의 친구들은 말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피츠제럴드와의 관계를 부인했습니다. 1992년 백악관에서 인터뷰하던 중에 NBC방송 앵커가 “소문이 진실이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런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추잡한 소문을 영구화시킨다”라며 화를 냈습니다. ‘sleaze’(슬리즈)는 추잡한 사람이나 행동을 말합니다. ‘sleazy lawyer’ ‘sleazy politician’ 등 형용사 형태로 많이 씁니다.

게리 하트 상원의원의 무릎에 앉아있는 도나 라이스. 하트 의원이 입은 티셔츠에 ‘몽키 비즈니스’라고 씌어 있다. 위키피디아


Monkey Business”
(속임수)
1988년 대선 때 콜로라도 출신의 게리 하트 상원의원은 민주당 후보 중에 선두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womanizer’(바람둥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그의 여자관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쳤습니다. 특히 도나 라이스라는 젊은 여배우 겸 모델이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트 의원은 라이스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유세 지원자일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타블로이드지 내셔널인콰이어러가 이들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을 게재하면서 하트 의원 대통령의 꿈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요트 여행 중에 선착장에서 라이스가 하트 의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무릎에 앉아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밑에는 “그가 나에게 결혼하자고 했어요”라는 도발적 제목도 실렸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은 하트 의원이 입고 있던 티셔츠에 적힌 ‘monkey business’라는 문구였습니다. 이들이 타고 있던 요트의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원숭이는 짓궂은 장난을 잘 치는 동물입니다. 수상쩍은 거래, 속임수를 뜻하는 ‘몽키 비즈니스’는 이들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명언이자 그해 최고의 유행어가 됐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개인 운전수 겸 비서였던 케이 서머스비. 위키피디아


I’ll run you out of the Army and keep you from ever drawing a peaceful breath again.”
(당신을 군대에서 쫓아내고 편히 살지 못하게 하겠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총사령관 시절에 케이 서머스비라는 운전병 겸 비서를 만났습니다. 그에게는 부인 마미 여사가 있었지만 전쟁 중에 서머스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서머스비를 “Ike’s shadow”(아이젠하워의 그림자)라고 불렀습니다.

서머스비에게 빠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친구인 조지 마샬 참모총장에게 “아내와 이혼하겠다”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마샬 총장은 “만약 자네가 이혼하면 군대에서 쫓아내고 편히 살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정신 차리라는 충고였습니다. ‘draw breath’는 ‘숨을 들이마시다,’ 즉 ‘살다’라는 뜻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서머스비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 변신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마샬 총장의 충고대로 서머스비와의 관계를 청산했습니다. 생활이 궁핍해진 서머스비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지만 보좌관으로부터 “다시 연락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과거 나의 비서가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명언의 품격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여자관계를 다룬 책 ‘프랭크와 루시.’ 랜덤하우스 홈페이지

191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는 루시 머서라는 여성을 비서로 채용했습니다. 어느 날 엘리너 여사는 남편의 가방 속에서 머서가 보낸 러브레터를 발견했습니다. 남편과 비서의 불륜관계를 눈치챈 엘리너 여사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머서와의 관계를 인정하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여성 편력을 다룬 책 ‘프랭크와 루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어머니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아들에게 “만약 이혼을 하면 유산을 한 푼도 남겨주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해군성 차관보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가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혼은 대통령이 되는 데 치명적인 결함이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혼을 포기했습니다. 이혼 위기를 넘긴 부부는 애정은 식었지만 정치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 관계가 됐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당선되자 엘리너 여사는 내조보다는 독립적인 대외활동으로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상을 확립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머서와 계속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엘리너 여사는 훗날 자서전에서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I have the memory of an elephant. I can forgive, but never forget.”
(나는 코끼리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용서를 해도 잊지는 못한다)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끼리는 영리하고 똑똑한 동물입니다.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서 “elephants never forget”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기억력이 출중한 사람을 가리켜 “he has the memory of elephant”라고 합니다. 자신을 코끼리에 비유해 남편의 외도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잘 표현한 엘리너 여사의 명언입니다. 미국을 전후 최강대국으로 만든 일등공신이 루즈벨트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만약 그가 이혼해서 대통령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면 미국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직도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전 보케 360

앨빈 브래그 맨해튼지검 검사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혐의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뉴욕 맨해튼지검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을 기소한 맨해튼 지방검사실의 앨빈 브래그 검사장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기자들은 기소 타이밍을 대선 시즌에 맞춘 이유, 기업문서 위조와 선거법 위반의 연관성, 유죄 입증을 자신하는 근거 등에 관해 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던진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막음 의혹이 당초 알려진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 건 이외에 2건 더 있다고 하자 브래그 지검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I’m glad you put finger on that.”
(그걸 확실히 지적해줘서 기쁘다)
‘put’은 ‘놓다,’ ‘finger’는 ‘손가락,’ ‘on’은 ‘위에’라는 뜻입니다. 어떤 것 위에 손가락을 놓는다는 것은 ‘콕 집어서 지적하다’라는 의미입니다. ‘identify’(아이덴티파이)와 같은 뜻이지만 ‘put finger on’이 더 의미가 확실히 와닿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즐겨 씁니다. 긍정문보다는 ‘not’과 함께 써서 부정문 형태로 더 많이 씁니다. “I can’t quite put my finger on it”이라고 하면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4월 22일 소개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만큼 스캔들이 많은 대통령이 있을까요. 취임 전부터 여러 건의 섹스 스캔들이 있었고 재임 중에는 러시아 스캔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스캔들이 많은 대통령을 ‘scandal-prone president’라고 합니다. ‘prone’(프론)은 ‘취약하다’라는 뜻입니다.

▶2019년 4월 22일자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90422/95158451/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미 상원 홈페이지

도널드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위해 2017년 5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임명됐습니다. 뮬러 특검 등장 후 약 2년간 미국 정치권에는 ‘러시아 스캔들’이란 초대형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최근 뮬러 특검의 수사보고서 전문이 공개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렸습니다. 승자는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갖가지 치부가 드러나 망신을 당했고, 민주당 역시 전략 부재 상태임을 보여줬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러시아 스캔들을 풍자하는 각종 농담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He has Americans reading again.”
(그는 다시 미국인들을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미국인들은 책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뮬러 특검 보고서는 너도나도 읽겠다고 합니다. 448쪽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인데도요. TV 심야 토크쇼를 진행하는 지미 키멀은 이런 농담을 던졌습니다. “누가 트럼프 대통령을 나쁜 사람이라고 했어? 미국이 다시 책을 읽게 한 건 순전히 그의 공로야.”

Robert Mueller is now a best-selling author.
(이제 로버트 뮬러는 베스트셀러 작가야)
448쪽짜리 PDF 파일을 컴퓨터로 보려면 눈이 아픕니다. 인쇄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뮬러 특검 보고서를 바로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가격은 약 10달러. 현재 아마존 베스트셀러 목록 1위, 2위, 9위에 뮬러 보고서가 올라있습니다. 직업이 작가도 아닌 뮬러 특검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영광을 안게 됐습니다.

Congress has finally located a computer with a CD-ROM. Now they are looking for a dot matrix printer.”
(의회가 드디어 CD롬 컴퓨터를 찾아냈다. 이제 닷매트릭스 프린터만 찾으면 된다)
소셜미디어에서 인기 높은 농담입니다. 뮬러 특검으로부터 보고서를 제출받은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이를 의원들에게 ‘CD’ 형태로 배포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고색창연한 CD라니요. 의원들은 CD를 작동시킬 CD롬이 장착된 컴퓨터를 찾느라 창고를 뒤지고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이제 인쇄를 하려면 ‘닷매트릭스’ 프린터만 있으면 됩니다. CD롬 컴퓨터에는 역시 ‘올드 패션’ 닷매트릭스 프린터가 어울립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