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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부모에 ‘돈 안주면 자녀 마약 신고’… 조선족 말투로 협박전화”

입력 | 2023-04-06 03:00:00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쇼크… 고교생 6명 당했다
시음행사라고 속여 마시게 한뒤
학부모 협박해 금품 뜯어내려해
4인조 일당중 2명 경찰에 붙잡혀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일대에서 ‘필로폰 음료’를 들고 있는 피의자들. 강남경찰서 제공


서울 강남구 학원가 일대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마약 성분이 담긴 음료를 속여 마시게 한 뒤 학부모를 협박해 금품을 뜯어내려던 4인조 일당 중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3일 오후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와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2인 1조로 다니며 고교생을 대상으로 필로폰과 엑스터시 성분을 섞은 음료를 마시게 한 일당 4명 중 2명을 붙잡았다고 5일 밝혔다.

경찰은 대치동 학원가 주변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여성 A 씨(49)의 인상착의와 차량번호를 토대로 신원을 특정해 5일 오전 1시 반경 동대문구 이문동 자택에서 A 씨를 체포했다. 검거 당시 A 씨가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본 경찰은 마약류 간이 검사도 진행했다.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같은 음료를 학생들에게 건넨 20대 남성 B 씨는 범행이 보도되고 CCTV 영상이 공개되자 이날 오전 10시경 자수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와 B 씨는 서로 모르는 사이로 나타났다. A 씨는 경찰에서 “마약인 줄 몰랐고, 인터넷에서 구한 아르바이트를 한 것뿐이다.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배후에서 범행을 지시한 주범과 이들과 함께 음료를 나눠준 20대, 40대 여성 2명을 쫓고 있다. 일당으로부터 마약 음료를 받아 마신 후 신체 이상을 호소한 고교생은 이날까지 6명으로 집계됐다.





“부모에 ‘돈 안주면 자녀 마약 신고’… 조선족 말투로 협박전화”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일당, 고교생에게 ‘음료’ 권한뒤 ‘구매조사 한다’며 부모 연락처 받아
“대포폰 사용해 500만원 보내라고 해”… 경찰, 해외조직 범행 가능성 주목



3일 오후 4시 58분경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서 한 남성이 교복을 입은 남학생에게 ‘마약이 든 음료수’를 건네고 있다. 독자 제공.

클럽 등에서 술이나 음료에 몰래 마약을 탄 뒤 범죄를 저지르는 ‘퐁당 마약’ 범죄가 강남 학원가로까지 확산된 것을 두고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경찰은 “4시간에 15만 원을 준다는 고액 아르바이트 행사로 알고 참여했다”는 피의자 진술을 토대로 배후에서 범행을 지시한 주범과 나머지 용의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 2인 1조로 건넨 ‘필로폰 음료’ 고교생 6명 마셔

A 씨 등은 학생들이 많이 지나는 지역을 돌며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좋은 것”이라며 시음 행사를 위장해 음료를 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3일 오후 6시경 서울 강남구 대치역 인근 학원가와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각각 2인 1조로 움직이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학생들이 많이 지나는 곳을 돌며 “기억력 상승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를 시음 행사 중이다. 최근 개발한 음료니 마셔 보라”며 마약 음료를 건넸다. 현재까지 대치역 인근에서 5명, 강남구청역에서 1명 등 총 6명이 음료를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음료병에는 도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명 제약사의 상호도 표기돼 있었다. 또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치역 인근에서 음료를 건네받았다는 고교생 박모 군(16)은 “낯선 사람이 ‘시음해 보세요’라며 같은 학년 10여 명에게 음료를 건넸는데 용기가 수상해 마시지 않았더니 연락처도 묻지 않더라”며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에서 같은 음료를 받은 친구도 있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문제의 음료에선 필로폰과 엑스터시 성분이 검출됐다. 피해 학생들도 간이 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 차례 소량 노출돼 중독 위험은 크지 않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피해가 신고된 게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 “조선족 말투로 500만 원 송금하라고 해”

이들은 무작위로 고교생에게 음료를 권한 뒤 받으면 “구매 의사를 조사하는 데 필요하다”며 학부모 연락처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 해당 번호로 “협조하지 않으면 자녀가 마약을 복용한 것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4인조 일당은 단순히 현장에서 음료만 건넨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에게 음료를 건네고 학부모들을 협박한 배후 세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대치동에 사는 한 40대 여성은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와 조선족(중국동포) 말투로 ‘당신 아이가 마약을 했다. 500만 원을 송금하라’고 했다고 들었다”며 “다행히 자녀가 음료를 마시진 않았고 전화를 바로 끊어 피해는 없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해외조직이 관여한 범행일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학부모에게 걸려 온 번호를 토대로 추적 중이지만 범행을 위해 만든 대포폰일 가능성이 크다”며 “협박을 받은 학부모들이 즉각 피해를 신고한 덕분에 아직까지 금전적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치동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범행 장소 인근에 거주하며 초등학생 자녀를 인근 학원에 보낸다는 이모 씨(46)는 이날 “학원 밀집지역에서 학생들을 노린 범죄 같아서 걱정”이라며 “인근에서 음료 시음 행사를 자주 하는데 아이들은 그런 걸 잘 받아 먹으니 너무 걱정돼 오늘은 직접 아이를 데리러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관계자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학원 관계자,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을 전국 학원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수서경찰서도 관내 62개 초중고교에 유의 사항을 담은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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