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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이어지는 KT의 비극[오늘과 내일/김용석]

입력 | 2023-03-31 21:30:00

세계 각국은 AI, 로봇 시대 질주하는데
지배구조 리스크에 발목 잡힌 KT



김용석 산업1부장


KT에서 벌어지고 있는 ‘막장 스토리’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황창규 KT 회장에 이어 최고경영자(CEO)가 된 구현모 대표가 스스로 회장에서 사장으로 낮춘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KT 관계자는 “회장이 아니라 사장이면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외부 인사의 레벨이 그나마 내려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정치 권력을 동원해 회장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자리의 격을 낮췄다는 얘기다.

민영화 이후 5명의 KT CEO 가운데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끝까지 마친 사람은 황창규 전 회장이 유일하다. 황 전 회장도 검찰 수사에 시달려야 했다. 그만큼 KT CEO는 권력 지형도 변화에 따른 위험에 노출돼 있다. 권한을 줄여서라도 자리를 지켜야 할 만큼 리더십이 취약한 셈이다.

리더십의 취약점을 구성원들이 알기에 제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여러 해 전, 지금은 퇴임한 KT CEO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취임 초기였던 그는 옆자리에 임원들이 있는데도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CEO를 흔들어댈 임원, 간부들이 많습니다.” 때마다 국회와 청와대(현 대통령실) 주변에 KT의 내부 총질 투서가 답지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런 풍경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지배구조는 오히려 후퇴했다. 전 KT 고위 인사에 따르면 사외이사를 뽑는 과정에서 외부 자문기구 추천을 받은 뒤 후보군 내에서 선정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었다. 기존 이사진과 무관한 전문가 그룹이 후보군을 정하도록 해 인선의 객관성을 높인 것이다. 하지만 그 제도는 중간에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구 대표 연임과 윤경림 후보 선임을 결정한 일부 사외이사 면면은 특정 정파와 가깝다는 시각을 벗어나기 어렵다.

CEO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외부 민간위원이 포함된 사장추천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복수의 외부 자문기관이 물색한 사장 후보군을 두고 선정 작업을 벌였던 과거보다 절차의 객관성이 떨어졌다. “그들만의 카르텔”이라는 여권의 공격에 빌미를 준 셈이다.

KT는 수개월째 멈춰서 있다. 회사의 한 임원은 “작년 11월에 했어야 할 인사가 지금까지 미뤄졌고, 이번 사태로 5개월은 더 있어야 진정될 것”이라며 “1년 가까이 아무것도 안 하는데 회사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문제는 피해가 정보기술(IT) 산업 전반, 한국 산업 전체에 미친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AI)과 로봇 시대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통신 고도화는 이를 가능케 할 핵심 조건이다. 네이버 카카오와 NC소프트 넥슨 등 IT 기업 창업가들은 1990, 2000년대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한국 유무선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부를 창출했다. 다음 세대 기업가는 초저지연, 초광대역, 초지능화가 가능한 6세대(6G) 통신망을 기반으로 탄생할 것이다. 무인비행기와 무인차를 운행하고 로봇이 서비스되려면 차세대 통신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통신시장이 허가제를 통해 해외 자본의 무분별한 진입과 과도한 경쟁을 제한하는 이유는 투자 재원의 안정적 확보 목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통신망은 글로벌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KT에 붙은 불을 서둘러 진화하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산업 전반, 국가 경쟁력 전체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