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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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140여 일 동안의 전시, 물경 55만여 명 관람. 바로 임옥상의 개인전 ‘여기, 일어서는 땅’ 이야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했던 임옥상 개인전은 많은 화제를 만발케 했다. 언론 보도 77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 7000여 건. 반응은 뜨거웠다. 전시 기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즐겨 해설했다. 아예 김규리 배우는 도슨트를 자처하면서 임옥상 예술 바로 알리기에 앞장섰다. 장사익 가수는 꽃다발 대신 전시장에서 즉석 노래를 불러주었다. 임옥상 전시의 커다란 특징은 관객 수보다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가 대거 동참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평소 오지랖을 짐작하게 한다. 하기야 개막식에서 축사한 주요 인사들만 해도 여타의 개막식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도올 김용옥 철학가, 유홍준 교수, 승효상 건축가, 그리고 참석자는 고은 시인,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등 참 다양했다.
임옥상의 ‘대지―어머니’(1993년)와 ‘검은 웅덩이’(2022년). 인물의 거친 살갗과 튀어나온 힘줄은 세파에 시달린 인생을 짐작하게 하고, 먹물을 담은 지름 4m의 웅덩이는 파란 풀밭과 상징적인 대조를 이룬다. 임옥상은 거친 땅과 흙, 물을 작품 소재로 삼아 현대사를 은유해 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임옥상의 ‘여기, 일어서는 땅’(2022년). 높이 12m의 대작으로 전시장 한 면을 가득 채웠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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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인기 포토존은 ‘흙의 소리’(2022년)였다. 약 4m 크기의 거대한 얼굴, 옆으로 눕혀져 있고, 머릿속을 빈 공간으로 처리해 관객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이번 전시는 흙 작업의 근작과 1980년대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초기작 ‘땅 2’(1981년)는 평화로운 산야를 참혹하게 파헤친 모습을 묘사했다. 상반부는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자연을 표현했고, 하반부는 파헤쳐진 붉은 땅으로 비교되는 분할 구성을 보였다. 땅을 파헤친 인간의 욕망. 땅의 수난사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흙과 땅을 소재로 한 작가의 집념은 평생 재료학을 연구하게 했고, 신작은 흙을 캔버스 바탕에 깔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임옥상은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대작 ‘아프리카 현대사’(1988년)는 거대 담론으로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신구 작품의 비교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이끌었다.
전시 기간 중 많은 미담이 쏟아졌다. 세계적인 미술 출판사 대표가 전시를 관람하고 감동하여 작품 구입 및 출판을 제안했다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물론 전시 준비의 과로는 작가를 오랫동안 입원하게도 했다. 많고도 많은 화제 만발. 임옥상의 ‘일어서는 땅’은 현대미술의 풍요로움을 제공했다. 누워 있는 땅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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