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대전 유성구 KAIST 존 해너 홀. 서남표 전 KAIST 총장(87) 환영 오찬이 열렸다. 서 전 총장을 위한 학교의 공식 행사는 그가 2013년 2월 미국으로 돌아간 뒤 처음이었다. 기자가 “고별 인터뷰(2013년 2월 6일자, A13면)를 한 지 벌써 10년이 됐다”고 인사를 건네자 서 전 총장은 “그리 오래 된 지 여기에 와서야 알았다”고 했다.
지난달 15일 대전 유성구 KAIST 존해너 홀에서 열린 환영오찬에서 서 전 총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서 전 총장은 고교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뒤 모교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기계공학과장과 미국 과학재단(NSF) 공학담당부총재(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 격) 등을 지내면서 공학 교육의 개혁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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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전 KAIST 총장이 저술한 공리적 설계이론에 관한 책.
하지만 재임 이듬해인 2011년 학부생 4명이 연쇄 자살하면서 그의 개혁은 저항에 부닥쳤다. KAIST 교수협의회는 미국식 경쟁 방식에 기반한 서 전 총장의 학교 운영이 원인이라고 몰아 붙였다. 최대의 공격 지점은 성적에 따른 등록금 차등 부과제였다. 학교가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학생들의 경쟁력과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 때문이었다. 설령 낙제를 하더라도 전액 국가 장학금을 받아온 학생들로서는 갑작스러운 등록금 고지서에 당황했을 법하다. 학점에 연연하면 노벨상이 어떻게 나오겠느냐는 반론도 나왔다. 교수협은 이 제도가 영어강의와 함께 연쇄 자살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공격했다.
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서 전 총장 측도 할 말이 많았다. 환영 오찬에 참석했던 당시 기획부서 관계자는 “당시 진상조사 결과, 자살 원인은 개인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따라서 학부모들도 학교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자세한 상황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유족들의 당부에 속수무책으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교수협은 이를 시작으로 서 전 총장 개혁 정책 전반에 대한 철회나 개선을 요구했고 결국 총장 퇴진 운동으로 이어갔다. 서 전 총장이 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해 도입한 영어강의에 대해 교수협은 강의의 심도 있는 이해를 어렵게 한다고 반대했다. 미래 경쟁력을 위해 젊고 우수한 교수(300명 안팎)의 대규모 충원에 나서자 재정 불안이 우려된다고 반대했다. 정부 예산에만 의존하면 독립적으로 혁신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면서 대규모 기부금을 유치하자 교수협은 기부자들에게 명예박사를 남발한다고 비판했다.
서남표 개혁 논란 당시 주요 쟁점에 대한 서 전 총장 측과 교수협의회의 공방 내용.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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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테뉴어 강화로 교수를 지나친 경쟁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이 있다고 했더니 서 전 총장은 “교수는 심사를 잘 받거나 논문 실적을 높이기 위해 경쟁하는 게 아니다. 그 학문 분야의 역사와 경쟁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서 전 총장의 고별인터뷰를 10년 만에 다시 읽어보다가 ‘역사와 경쟁한다’는 대목에 눈길이 멈췄다.
‘당시 역사와 경쟁했던 것은 누구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건 기자만의 궁금증이 아니었다. 그동안 만난 많은 사람들이 “당시 논란의 당사자 중 누가 옳았던 거냐”고 물어보곤 했다. ‘해피 캠퍼스’를 슬로건으로 내건 후임 강성모 총장 시절, “캠퍼스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안도와 “학교가 경쟁 잠재력을 잃어간다”는 자성이 엇갈렸다.
10년이 지난 지금 최소한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수협의 문제 제기는 KAIST의 학교 운영 방식을 개선했고 그 이후에도 개혁과 경쟁 방식에 대한 성찰을 제공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들은 대부분 서 전 총장의 개혁 정책을 핵심 발전 전략으로 적극 채택해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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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오후 대전 유성구 KAIST 교내 KI빌딩에서 열린 서남표 홀 제막식.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16일 울산시 UNIST에서 서남표 전 KAIST 총장(오른쪽)이 이용훈 UNIST 총장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있다. UNIST 제공
기자는 출국 전 서 전 총장과 통화를 하다가 “10년 전 역사와 경쟁한 것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적이 있다. 다소 완곡한 대답이었지만 의미는 분명해 보였다.
“미국 정부(NSF)와 MIT에서도 일했지만 KAIST에서 일한 6년 여 동안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언젠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 돌아와 조국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KAIST는 이제 세계적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명문대학으로 발전했습니다. UNIST는 놀라운 성과와 잠재력을 보이는 학교로 성장했습니다. KAIST 총장 당시 열정과 능력을 갖춘 보배 같은 분들과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그 분들을 다시 만나 뵐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