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허우적대는 메타버스, 설마 이대로 끝나나요?[딥다이브]

입력 | 2023-02-22 08:51:00


소셜미디어는 물론이고 신문과 방송뉴스에서조차 요즘 매일 이 단어를 마주치게 됩니다. ‘챗GPT’. 핫한 소재를 더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부채질하는 게 미디어의 기본속성이구나 싶은데요. 다들 너무 열광하니까 왠지 챗GPT가 아닌 다른 주제를 다루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걸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메타버스’.

왜 이 타이밍에 맥 빠지게 메타버스이냐고요?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챗GPT와 생성형 인공지능(AI) 바로 직전에 시장을 휩쓸었던 유행어였기 때문입니다. 무섭게 끓어올랐다가 놀랍도록 빠르게 꺼져버린 메타버스 거품을 되돌아보려 합니다. 아마 지금의 AI 열기를 냉정히 판단하는 데도 참고할만 할 겁니다. 그럼 같이 메타버스의 현재와 미래 이야기로 딥다이브해보시죠.

*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기억하시나요, 메타버스? 메타 홈페이지

메타버스, 그 정의가 모호하다
메타버스(Metaverse)를 기억하시나요. 2021년부터 2022년 초반까지 세상을 휩쓸었던 그 키워드 말입니다. 투자자들을 열광했고, 메타버스 관련주 주가는 치솟았고, 모든 기업은 물론 정부기관까지도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를 발표하려 안달이었죠.

한바탕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메타버스는 먼 기억이 되고 말았는데요. 왜 이렇게 메타버스 붐이 금세 꺼져버렸을까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메타버스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없다.’ 애초에 정체가 불분명한 거였고 그래서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그 정의가 모호한데요. 메타버스임을 주장하는 것들을 모아서 제가 나름대로 분류해본 건 대략 이렇습니다.

메타버스 열풍의 시작이었던 로블록스. 하지만 정작 요즘엔 ‘로블록스는 진정한 메타버스가 아니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로블록스 홈페이지

아바타를 통해 경험하는 게임과 SNS

미국 게임업체 로블록스는 2021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스스로를 게임이 아닌 ‘메타버스’로 정의합니다. 이후 로블록스 주가가 폭등하면서 증시에서 ‘메타버스 열풍’이 일기 시작했죠. 몰입형 3차원 공간에서 사용자들이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라는 주장인데요. 좀 애매합니다. 그것도 결국 게임 아닌가요? 2006년 출시 이후 로블록스는 줄곧 게임 플랫폼으로 불려왔는데 말이죠. ‘로블록스는 게임인가, 메타버스인가’는 여전히 논란거리.

네이버의 ‘제페토’처럼 아바타를 통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메타버스로 불립니다. 나와 닮은 3차원 아바타를 만들어 교류할 수 있죠. 최근에 핫했던(하지만 벌써 인기가 식고 있다는) ‘본디(Bondee)’도 ‘찐친(진짜 친구)들의 메타버스 아지트’를 표방한 SNS이고요. 솔직히 20년 전 싸이월드를 연상시키는데요. 그래서 ‘메타버스는 새로울 게 없다. 그럴싸 해보이는 마케팅 용어’라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랜드(가상부동산)를 판매 중인 더 샌드박스. 더 샌드박스 화면 캡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세계 생태계

일부에선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해야 진짜 메타버스라고도 봅니다. 메타버스 안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면 신뢰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인데요. 그런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 사례가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와 더 샌드박스(The Sandbox)입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부동산이나 작품을 사고팔 수 있는 가상현실 공간을 제공하는데요. 2021년 11월 디센트럴랜드 중심지 땅(물론 가상 땅)이 29억원에 거래돼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더랬죠. 물론 요즘엔 예전만큼 거래가 활발하진 않다는데요. 최근 뉴욕타임스가 ‘다음 뜨거운 주택시장은 메타버스’라며 기사를 쓴 걸 보면 여전히 성장세가 이어지긴 하나 봅니다.

메타는 VR헤드셋 이용자들이 게임과 함께 운동 앱을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한다. 메타 홈페이지

VR 또는 AR 하드웨어와 결합된 몰입형 3차원 세계

페이스북은 2021년 10월 회사 이름을 아예 메타(Meta)로 바꿔버렸습니다. 메타는 2014년 가상현실(VR) 헤드셋 회사 오큘러스를 인수한 뒤 VR∙XR(혼합현실)∙AR(증강현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만들고 있습니다.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가상세계에서 친구를 만나고, 게임을 하거나, 집을 꾸미고, 운동하고, 회의도 할 수 있죠(짜잔!). ‘메타 퀘스트2(399달러)’가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팔린 VR 헤드셋. 지난해 10월엔 고급형인 ‘메타 퀘스트 프로(1499달러)‘도 내놨습니다. XR 헤드셋이 노트북이나 PC를 대체하게 될 세상이 언젠가는 올 거라는 게 앤드류 보스워스 메타 CTO의 비전인데요. 딥다이브에서는 이 세번째 메타버스의 세계를 좀더 들여다 보겠습니다. 도대체 왜 메타의 원대한 비전은 시장에서 외면받게 됐을까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메타버스
혹시 그 ‘짤(이미지)’ 보셨나요? 챗GPT라는 새로운 아기가 등장하자 메타버스는 물에 빠져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한때 꽤나 핫했던 NFT(대체불가능토큰)는 이미 사망해 뼈만 남은 이미지. 빠르게 열광하고 빠르게 식어버리는 세상을 잘 보여주는데요. 그래서 메타버스는 정말 그렇게 가라앉고 있나요?

사랑 받는 뉴 베이비 챗GPT와 외면 받는 메타버스, 이미 사망한 NFT를 합성한 온라인 이미지.

현재로선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여러가지 지표가 있는데요. 일단 구글 트렌드에서 ‘metaverse’를 찾아보면 검색량이 1년 동안 80%가량 줄어든 걸로 나옵니다.

메타버스 사업부를 대폭 축소하는 기업들이 줄 잇고 있죠. 마이크로소프트는 산업용 메타버스팀을 해산하고 직원 100명을 해고했습니다. 중국 텐센트는 XR 하드웨어 개발 계획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기사가 나왔고요(텐센트는 포기가 아닌 방향 변경이라고 아니라고 주장). 최근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VR헤드셋 제조업체 피코(중국 바이트댄스가 소유) 역시 감원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럼 메타는?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는데요. 메타의 메타버스 사업부 리얼리티랩스(Reality Labs)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무려 137억2000만 달러(약 17조8000억원). 이 사업부의 매출이 21억6000만 달러(메타 전체 매출의 2% 미만)인 걸 감안하면 적자 규모가 엄청나죠. 그만큼 엄청난 연구개발비(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름)를 썼다는 뜻인데요. 정작 지난해 4분기 퀘스트2 헤드셋의 판매량은 전분기보다 오히려 감소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본업(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광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리얼리티랩스라는 돈 먹는 하마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거죠.

메타의 VR 헤드셋 기반 메타버스가 소비자에게 썩 어필하지 못하는 데는 하드웨어 자체의 한계도 있긴 합니다. 막상 써보니 무겁고(퀘스트2는 503g) 해상도도 떨어지고(해상도를 높이면 발열이 심해짐) 착용이 썩 편하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비싸니까요(퀘스트2는 399달러, 퀘스트 프로는 1499달러). 배터리 수명은 짧은데(2시간 내외) 완전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꽤 길고요(약 2시간).

다리가 없고 매력적이지 않은 아바타는 메타버스 몰입도를 해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메타 홈페이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소프트웨어입니다. 메타가 만든 소셜 VR플랫폼인 ‘호라이즌월드(Horizon World)’는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가장 많이 지적(또는 놀림) 받은 게 ‘아바타에 다리가 없다!’는 거였는데요(다리 없이 허리가 둥둥 떠있음). VR 헤드셋이 물리적으로 다리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가상세계에서 구현이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다리 없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죠. 온라인 게임의 수준 높은 그래픽에 익숙한 유저들에겐 그래픽 수준도 낮았고요(아바타가 촌스럽다는 비웃음을 받음). 게다가 오류는 왜 그리도 많은지.

메타는 당초 2022년 말까지 호라이즌월드 월간 활성사용자 수 50만명 달성을 목표로 했는데요. 지난해 10월 나온 보도에 따르면 실제 이용자 숫자는 20만명 미만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2월 30만명을 돌파했는데, 이후에 오히려 사용자가 줄어드는 중.

오죽하면 메타의 메타버스 담당 부사장 비살 샤가 지난해 9월 이런 내부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입니다. “호라이즌월드를 더 많은 사용자에 공개하기 전에 품질과 성능 문제를 해결하세요. 우리(메타 직원) 중 많은 사람들이 호라이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용자들이 그걸 좋아할 수 있겠어요?

“가장 큰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져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데이브 카르프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그는 1500달러짜리 퀘스트 프로를 샀지만 고작 세번만 사용했다는군요. 카르프 교수는 이걸 ‘꿈의 분야 오류’라고 지적했는데요. ‘그것을 구축하면 그들(소비자)이 온다’는 가정 자체가 틀렸다는 거죠.

오큘러스 CTO 출신으로 메타의 고문을 맡았던 ‘전설의 프로그래머’ 존 카맥은 지난해 말 그만두면서 메타의 메타버스 사업에 대해 쓴소리를 잔뜩 남겼는데요. 그는 퀘스트2 자체에 대해서는 ‘내가 처음부터 보고 싶었던 것과 거의 똑같다’며 칭찬했어요. 하드웨어 기술력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대신 나머지, 특히 일하는 방식에 대해 맹비난을 했습니다. “우리(메타)는 말도 안 되는 양의 인력과 자원을 갖고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 방해 행위를 하고 노력을 낭비합니다. 우리 조직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효율성의 절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존 가맥은 자신의 AI 스타트업 Keen Technologies 운영에 전념할 거라고 합니다. 요즘 고급 엔지니어들은 다 AI 쪽으로 빠르게 갈아타는 중.)

메타가 소개하는 퀘스트2를 이용한 메타버스 가상회의의 모습. 하지만 사용자들 사이에선 ‘줌 화상회의와 달리 참석자들의 얼굴 표정을 살필 수 없어서 굳이 이용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메타 홈페이지

메타의 종말? 이제 시작?
그럼 메타버스는 가망이 없을까요? 이대로 망하나요? 그건 아닙니다. 크게 두가지 점에서 희망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새롭고 강력한 플레이어가 등장할 예정이란 점입니다. 바로 애플.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첫번째 VR∙AR 헤드셋을 오는 6월 열릴 세계 개발자회의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애플은 2015년부터 VR∙AR 헤드셋을 개발해왔죠. 재작년부터 곧 나올 거란 소문만 무성했는데, 드디어 나오나 봅니다. 첫번째 제품은 한 대에 약 3000달러가 될 거라는군요(정말 비싸네요). 올 연말쯤 미국 시장부터 출시될 예정이고요. 2024년엔 더 저렴한 버전이 나올 거라고 합니다.

애플의 헤드셋이라니. 과연 어떤 사용자 경험을 주게 될까요. 한편으로는 기대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메타처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실제 애플 내부에서도 이런 걱정도 나온다고). 확실한 건 애플은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 애플 마케팅 책임자 그렉 조스위악이 메타버스에 대한 질문에 “절대 사용하지 않을 단어”라고 말한 적 있죠.

비록 애플은 이름을 불러주진 않겠지만, 메타버스 업계에선 애플이 뭐라도 제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한마디로 ‘메타버스의 아이폰’이 필요한 겁니다. 혹시 애플은 그걸 해낼 수 있으려나요?

메타의 고급형 헤드셋 퀘스트 프로. 1499달러라서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 많다. 애플이 올 연말쯤 출시할 헤드셋은 이보다 비싼 3000달러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타 홈페이지

또다른 희망은 아직 메타버스는 초기 시장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해 10월 더 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제품(퀘스트 프로)는 업무용 VR헤드셋의 첫번째 버전이고, 버전4~버전 5가 나올 2020년대 후반까지는 완전히 제품이 성숙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그만큼 장기 프로젝트인 걸 이미 알고 뛰어들었다는 거죠.

그게 왜 희망적이냐고요? 아직은 성공과 실패를 논하긴 너무 이르다는 점에서 희망이 남아있는 셈이죠. 닷컴버블이 꺼진 뒤에도 아마존은 더 크게 살아남은 것처럼 메타버스에서도 계속 이어질 무언가가 탄생하긴 할 거란 막연한 기대랄까요. 물론 그게 저커버그가 말한 2020년대 후반에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이쯤에서 글로벌 VC인 알타R캐피탈 설립자 이고르 랴벤키의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챗GPT를 주제로 한 말인데요. 제가 챗GPT 뉴스를 접하며 메타버스를 떠올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경험 없는 투자자는 종종 새로운 기술 혁신에 종교적인 황홀경을 느끼지만 노련한 투자자는 시장 주기의 자연스런 부분으로 인식합니다. 모든 주요 기술 발전에는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열광과 그것이 어떻게 다른 모든 것을 쓸모없게 만들고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파괴하며 삶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 것인지를 설명하는 수많은 기사가 수반됩니다. 이는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메타버스에서도 그랬습니다.”

By.딥다이브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그렇게 큰 유행어가 된 것도 신기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인기가 식어버린 것도 놀라운데요. 오히려 초기 버블이 꺼진 지금이 진짜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달리 말하면 아직 극초기인데 버블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시장이 있다면 투자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메타버스는 여전히 아무도 정확한 정의를 모릅니다. 로블록스 같은 게임도, 블록체인으로 거래하는 가상 부동산의 세계도, 메타의 VR 헤드셋 속 가상현실도 모두 메타버스라 불리고 있죠. 메타가 메타버스 사업에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면서 메타버스 거품은 빠르게 꺼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이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더 문제로 지적됩니다. 애플은 오는 6월쯤 첫 VR헤드셋을 공개한다는데요. 과연 꺼져가는 메타버스 열기를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요. 아주 장기적으로 보면 뭔가가 이뤄지긴 하겠죠?

*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한애란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