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어떻게… 과거 ‘주총 거수기 꼬리표’ 떼고 적극적 주주권 강화 나섰지만, 정부 눈치보기-인사개입 논란 ‘연금 관치’ 비판서 못 벗어나… 복지부장관이 기금위원장 맡아 독립적 의사결정 내리기 어려워 “공사화-외부에 운용 맡겨야”
신아형 경제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업무보고에서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에 대한 스튜어드십을 언급하자 국민연금이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KT, 포스코 등 명확한 대주주가 없는 회사들의 임원 선임 과정에서 스튜어드십코드 준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과거부터 내왔다.
영어로 ‘집사’라는 뜻의 ‘스튜어드십(stewardship)’은 큰 저택에서 주인 대신 집안일을 도맡는 집사처럼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경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행동 지침이다. 기업경영 감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과도한 스튜어드십 행사가 민간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국민연금을 둘러싼 ‘관치’, ‘연금 사회주의’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자본시장 큰손’ 국민연금
국민연금에 따라붙던 꼬리표는 과거엔 ‘주총 거수기’였다. 우량기업의 1, 2대 주주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서 주주총회에서는 존재감 없이 찬성표만 던진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 국민연금은 2018년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을 제정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고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 강화에 나섰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전인 2017년 12.9%에 그쳤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도입 이후 2018년 18.8%, 2019년 19.1%로 높아졌다. KT는 지난해 연 매출이 1998년 상장 이후 처음 25조 원을 넘어서는 등 2020년 구 대표 취임 이후 괄목할 만한 경영 실적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절차적 문제를 내세워 인사에 제동을 건 국민연금의 ‘본의’가 투명성 강화보다는 전 정권 시절 임명된 구 대표의 연임 저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 리스크가 부각되며 KT의 주가는 지난해 12월 3만8000원대에 달했으나 최근 3만3000원대까지 내려앉았다.
●“기금위, 정부로부터 구조적 독립 이뤄야”
한편 국민연금은 13일 국내 위탁운용사 30여 곳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이번 설명회가 “의결권 행사 투명성 및 공정성 제고를 위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연기금이 민간기업 좌우 못하게 6개로 쪼개”
에크발 스웨덴 국가연금펀드 CEO
스웨덴의 공적연금제도는 연기금이 민간 기업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설계돼 있다. 스웨덴이 2001년 연금개혁을 통해 AP를 기본연금으로 운용하는 AP1∼4와 AP6, 프리미엄연금을 운용하는 AP7 등 독립된 6개 기금으로 분할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AP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각 9명으로 구성되는데 정부가 자산운용 전문가 5명을 임명한다. 근로자 대표 단체와 사용자 대표 단체도 각 2인씩 4명을 지명한다.
지난해 말 기준 스웨덴 AP 총 운용자산은 약 2400억 달러(약 303조 원)로 AP4는 이 가운데 약 450억 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기금운용 조직 분할로 독립성과 효율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에크발 CEO의 설명이다. 그는 “조직이 분산되면서 과도한 경영권 침해 등 자본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고, 의결권 행사에 대한 정치적 압력도 줄었다”며 “여러 개 펀드로 분산 투자하는 효과가 있어 환율 등 리스크 관리가 수월하고 투자 의사결정의 유연성도 커졌다”고 했다.
에크발 CEO는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단일 기금인 한국의 국민연금 규모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정수익을 추구하거나 지수를 추종하는 투자를 주로 한다면 기금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겠지만 독립적이고 유연한 투자 전략을 추구한다면 한국도 기금운용 조직을 2개 이상으로 쪼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아형 경제부 기자 abro@donga.com
스톡홀름=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