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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로 투자한 청년들 ‘영털’에 눈물… 상사 눈치보며 ‘억텐’ 리액션

입력 | 2022-12-31 03:00:00

2022년 달군 MZ세대 신조어
‘중꺾마’로 강한 의지 다지고, ‘알빠임?’ 외치며 용기 얻어




취업준비생 심모 씨(26)는 올 초까지만 해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활용한 재테크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 자산 상승장을 보면서 카페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2000만 원을 벌었다. 하지만 올해 자산 시장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2000만 원은 증발했고 빚만 500만 원 남았다.

국민적 신조어였던 ‘영끌’의 자리를 2022년에는 ‘영털’(영혼까지 털렸다)이 대신했다. MZ세대들의 올 한 해를 신조어를 통해 돌아봤다.
○ 경제생활, ‘영털족’의 ‘갚으자’
각종 경제 악재에 각국은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의 자산 가치는 급락했다. 대출 이자가 불어나면서 ‘영털족’이 된 청년들은 이전 유행어인 ‘가즈아’ 대신 올해 ‘갚으자’를 외쳤다.

직장인 이모 씨(33)는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약 2억5000만 원의 신용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샀다. 당시 2.33%이던 이자율은 올 초 3.23%나 됐고, 내년에는 6%대로 예상된다. 이 씨는 “현재 매달 이자만 65만 원을 내고 있는데 그 두 배가 될 걸 생각하니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공격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던 20, 30대도 올해 감소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주택 매매량(44만9967건) 중 30대 이하의 주택 매매량은 10만8638건으로 전체의 24.1%를 차지했다. 2019년 24.3%, 2020년 25.3%, 2021년 27.1%까지 매년 증가했지만 올해는 전년 대비 3.0%포인트 하락했다.
○ 직장생활, 속으론 ‘고진감래’여도 ‘억텐’
수년간 간절히 취업을 바랐던 양모 씨(32)는 올해 직장인 2년 차가 되면서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훨씬 즐거워졌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사자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런 직장인들의 마음을 담아 ‘고용해주셔서 진짜 감사한데 집에 갈래’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일이나 연봉, 복지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싶거나, 회사를 다니고 있어도 퇴근은 빨리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으로 영혼 없이 일하는 사람을 ‘소울리스(soul+less)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갚으자’ 상황에 처한 청년들은 월급을 위해 원만한 직장 생활을 중시하며 ‘억텐(억지 텐션)’을 외친다. 상사의 말이나 행동에 억지로 재미있는 척하거나 신나는 리액션을 한다는 신조어다.
○ 내년도 쉽진 않겠지만… ‘알빠임?’ ‘오히려 좋아!’
4년간 준비했던 공무원시험을 포기한 수험생 우현우 씨(26)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알빠임(알 바임)?’이란 신조어에 용기를 얻었다. ‘내가 알 바 아니다’의 축약어로, 상대 팀이 누구며 얼마나 전력이 강한지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경기를 치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올해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탄생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가나와의 경기에 진 후 모두가 16강 진출을 체념했을 때 누군가 소셜미디어에 ‘포르투갈 이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썼다. ‘포르투갈 우승 후보임’이라는 댓글에 글쓴이는 다시 ‘알빠임(알 바임)?’이라고 달았다. 이후 대한민국은 포르투갈을 잡고 16강에 진출했다. 우 씨는 “내 기량만 잘 보여주자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도 같은 맥락이다. 11월 열린 게임대회인 2022 월드 챔피언십 당시 DRX의 데프트(본명 김혁규) 선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대 최고 팀을 이기고 10년 만에 우승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강조한 것.

예상치 못한 난관에도 이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위기의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외치는 ‘오히려 좋아!’도 올해 인기를 끈 말이다. 전남 장성군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김재원 씨(27)는 올해 고유가로 해외 판로가 막혀 수입이 반 토막이 났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커피 로스팅을 배웠고, 농장을 문화 체험장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농사로만 바빴다면 커피 배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새해를 맞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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