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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투표 100%’ 與 전대 룰 개정, 이명박 정부가 어른거린다

입력 | 2022-12-24 10:38:00

[이종훈의 政說] 2011년 무산된 친이계의 여론조사 폐지 방안, 尹 정권서 되살아나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룰을 ‘당원 투표 100%’로 가닥을 잡았다. 당대표 선출 과정에 국민여론, 곧 ‘민심’을 반영하지 않고 ‘당심’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전대 룰 개정은 외견상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비롯한 친윤석열(친윤)계 인사들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배후에서 윤 대통령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위기 때마다 민심 외친 보수 정당

이명박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시간을 되돌려 18년 전인 2004년으로 가보자.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2003년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터진 데 이어, 국면 전환 차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추진한 탄핵 역시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총선 참패가 예상되자 한나라당은 민심을 반영한 지도부 선출 카드를 꺼냈다. 한나라당 당대표 선거관리위원회는 2004년 3월 9일 당심과 민심을 각각 50%씩 반영하는 경선룰을 확정했다. 나흘 뒤인 3월 13일 개최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박 전 대통령은 천막 당사를 차리며 취임 첫 행보를 밟았다.

당이 존폐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민심이라는 동아줄을 잡았고, 총선에서 121석을 확보해 참패를 면했다. 그랬던 국민의힘이 민심을 옆으로 치워뒀다. 보수 정당은 2004년 이후로도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심을 외쳐왔는데 말이다. 2020년 9월 2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정한 것도 국민, 곧 민심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결심의 표현 아니었나. 경선룰 개정을 주도한 윤핵관을 비롯한 친윤계 정치인들은 한국 정치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한국 정치를 18년 후퇴시킨 이들로 기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당원 투표 100%가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형국이다. 민심에 역행하는 바람에 2024년 총선에서 참패하거나 2027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고 만다면 보수 정권 재창출에 기여한 윤 대통령 역시 보수 정당사에 부정적으로 기록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도 두 차례나 위기에 처한 보수 정당을 구했고 대통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최초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돼 공과(功過)가 엇갈린 보수 정치인으로 기록됐다.

윤핵관을 포함한 친윤계 정치인 상당수는 친이명박(친이)계로 분류되던 사람들이다. 친이계는 이명박 정부 말기에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2011년 6월 8일 한나라당은 의원총회와 상임전국위원회, 전국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전당대회 경선룰에서 여론조사 반영을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민심을 업은 박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인물이 차기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커지자 꼼수를 부리려 한 것이다. 해당 시도는 의원총회와 상임전국위원회에서 과반이 여론조사 유지를 찬성해 무산됐다. 천막 당사 시절의 뼈아픈 추억이 남아 있었던 시기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경선룰 개정과 관련해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당의 20·30·40대 당원은 전체의 약 33%”라고 말했다. 이어 “50대 이상 연령층이 책임당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특정 정치인에게 유리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원 수가 79만 명으로 증가했고 연령대별 구성도 국민 전체와 차이가 적으니 굳이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2011년에도 친이계는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당원 수가 20만여 명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20만 명도, 79만 명도 전체 국민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민심 멀어질수록 선거 불리

윤석열 대통령. 동아일보DB

당원 수가 증가해 그들이 곧 전체 국민의 표본 집단과 다름없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필요 없다는 주장은 자기모순이다. 해당 주장이 옳다면 기존 여론조사 방식을 폐지할 이유도 딱히 없다. 당심이 민심과 일치하는 ‘민심=당심’ 상황이라면 여론조사만으로 결정을 내려도 무방한 것 아닌가. 더욱이 국민의힘이 민심만 바라보고 간다는 점을 강조하려면 상징적으로라도 여론조사 결과를 30% 반영하는 기존 방안이 유리하다.

2011년 친이계의 경선룰 변경 시도가 무산된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 말기 레임덕이 작용한 것과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상당히 작용했다. 지금은 윤석열 정부가 초기이기도 하지만 여당에 박 전 대통령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도 없다. 친윤계가 손쉽게 경선룰 변경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과거 친이계였던 일부 친윤계는 그때 이루지 못한 꿈을 내부 견제 세력이 취약한 틈을 타 이룬 셈이다.

역사의 시계를 18년 전으로 되돌린 이번 결정은 향후 국민의힘에 어떻게 작용할까. 단기적으로는 별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 했다. 민심과 거리가 멀어진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천막 당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다.

경선룰 변경으로 친윤계 대표를 당선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윤 대통령은 2024년 총선을 자신의 선거로 치르려 할 가능성이 크다. 역대급 계파 공천을 시도할 테고, 경선 과정에서는 물론 본선 과정에서도 윤석열 마케팅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한다면 경선룰 변경은 보수 정당사에서나마 신의 한 수로 기록된다. 반대라면 당연히 최악의 한 수로 남을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70호에 실렸습니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