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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위헌 누더기’ 집시법… 장소 아닌 ‘폭력·소음’이 금지 기준 돼야

입력 | 2022-12-24 00:00:00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시법’ 11조가 헌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그제 내렸다. 헌재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자 할 때 대통령 관저 인근은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장소”라며 “관저 인근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국회에 2024년 5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번 결정은 집회금지 구역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제한해선 안 된다는 기존 헌재 판단의 연장선상에 있다. 헌재는 4년 전 국회와 법원, 국무총리 공관 인근에서의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단 한 명의 반대 의견 없이 재판관 9명이 모두 위헌 편에 섰다. 외교 공관 인근 집회에 대해서도 오래전 같은 판단이 내려졌다. 법 제정 때부터 40년간 유지된 헌법기관장과 외교 공관 주변을 집회 금지구역으로 하는 집시법 조항 전체가 위헌 판정을 받아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장소 앞이라고 해서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법령을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집회 금지 장소가 열거되어 있는 집시법은 후진적이다. 장소가 아닌 집회의 종류와 방식, 강도에 따라 집회를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폭력을 사용한다든지, 소음이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면 집회를 불허하거나 중지시켜야 한다. 특히 주거지역 집회로 이웃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추세여서 이런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헌재 결정과 정반대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국회는 이번 결정의 의미를 되짚어 봐야 한다. 국회는 기존 집회 금지 구역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하는 개정안에 합의했다. 여야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하나씩 주고받는 땜질식 개정이다. 지금은 집회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모든 국민이 동등한 입장에서 비정상적인 집회로부터 원하지 않는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국회가 국민 전체를 위한 법 개정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