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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요[이준식의 한시 한 수]〈184〉

입력 | 2022-10-28 03:00:00


꽃인 듯 꽃이 아니요, 안개인 듯 안개도 아닌 것이

한밤중 왔다가 날 밝으면 떠나가네.

춘몽처럼 와서 잠시 머물다, 아침 구름처럼 사라지니 찾을 길 없네.

(花非花, 霧非霧, 夜半來, 天明去. 來如春夢幾多時, 去似朝雲無覓處.)

―‘꽃인 듯 꽃이 아니요(화비화·花非花)’ 백거이(白居易·772∼846)


백거이는 시 한 수를 완성할 때마다 그걸 집안일 하는 노파에게 먼저 읽어주고 노파가 뜻을 이해하면 그제야 자신의 시로 기록했다고 한다. 그의 시를 ‘산둥(山東) 사는 노인이 농사짓고 누에 치듯 모든 말이 다 사실적이다’라고 평가한 이도 있다. 자신의 박학다식을 활용해 삶의 철학, 남녀 간의 곡진한 연정 따위를 묘사한 작품도 적지 않지만 어쨌든 그의 시가 쉽고 통속적이었다는 걸 증명하기엔 충분하다. 이 시는 좀 유별나다. 시어도 쉽고 구성도 단순한데 시인이 무얼 말하려 하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꽃인가 싶지만 꽃이 아니고 안개인가 싶은데 안개도 아니다. 뒤 구절에 힌트가 있는 듯하지만 몽롱하기는 마찬가지. 도무지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한밤에 왔다가 날이 새면 떠나는 이것, 일장춘몽처럼 잠깐 머물다가 아침 구름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이것.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이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꽃처럼 안개처럼 춘몽처럼 구름처럼 아름답고 달콤하되 쉬 사라져버리는 그 무엇은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일까. 피할 수 없는 인생무상의 허무함일까.

명대 문인 양신(楊愼)은 자신이 유독 이 시를 사랑한다면서 그 이유를 송옥의 ‘고당부(高堂賦)’, 조식의 ‘낙신부(洛神賦)’가 아무리 아름답대도 이 작품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 두 작품은 인간과 신녀(神女)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묘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시는 시인이 남녀 간 사랑의 허망함에 대해 한번 무람없는 상상을 해본 것인지도 모른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