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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황제’ 페더러가 쌓아 올린 위대한 숫자들 [데이터 비키니]

입력 | 2022-09-24 14:29:00


은퇴 경기를 마친 뒤 동료에게 축하를 받고 있는 로저 페더러. 런던=AP 뉴시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1·스위스)가 15년에 걸친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페더러는 2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린 2022 레이버컵 첫날 라파엘 나달(36·스페인)과 짝을 이뤄 복식 경기에 나섰다.

유럽 팀으로 나선 페더러-나달 조는 미국 팀 잭 속(30)-프랜시스 티아포(24) 조에 1-2(4-6, 6-7, 9-11)로 패했지만 사실 경기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경기가 끝나든 페더러는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무대를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페더러는 경기 후 "완벽한 여정이었다. 한 번 더 할 수 있을 정도"라면서 "오늘은 슬픈 날이 아니라 행복한 날이다.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페더러가 걸어온 길을 숫자와 함께 정리했다.

0. 페더러는 ATP 투어에서 총 1521경기를 뛰는 소화하는 동안 경기 도중 기권을 선언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한국어로는 경기 전에 출전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하든(withdrawl) 경기 도중에 포기하든(retirement) 전부 '기권'이라고 쓰는 게 일반적이지만 영어로는 둘을 구분한다. 그러니까 페더러가 retirement(은퇴)를 선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 페더러는 1998년 9월 29일 기욤 라오(Guillaume Raoux·52·프랑스)를 상대로 투어 첫 승을 거뒀다. 이후 2019년 5월 29일 오스카 오테(Oscar Otte·29·독일)를 물리치면서 알파벳 26글자 가운데 25글자로 성(姓)이 시작하는 선수를 모두 이겼다. 단, 끝내 X로 시작하는 선수는 이기지 못한 채 투어 무대를 떠나게 됐다.

2. 페더러는 2008년 프랑스 오픈부터 2010년 호주 오픈 때까지 8회 연속 메이저 대회 결승을 밟았다. ATP 역사상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위는 역시 페더러가 2005년 윔블던부터 2007년 US 오픈 때까지 남긴 10회 연속이다. 그러니까 페더러는 2005년 윔블던부터 2010년 호주 오픈 사이에 열린 메이저 대회 19번 가운데 18번 결승에 오른 것이다.



3. 페더러는 윔블던에서 8번, 호주 오픈에서 6번, US 오픈에서 5번 정상에 올랐다. 4대 메이저 대회 중 3개 대회에서 5번 이상 우승한 선수는 페더러뿐이다. 페더러는 2009년에는 프랑스 오픈 우승을 차지하면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도 성공했다.

4. 4강으로 범위를 넓히면 페더러는 2004년 윔블던부터 2010년 호주 오픈까지 23회, 8강은 2004년 윔블던부터 2013년 프랑스 오픈 때까지 36회 연속 진출 기록을 남겼다. 물론 둘 모두 ATP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36회 연속 8강에 올랐다는 건 9년 동안 메이저 대회 1~4라운드에서 140전 전승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5. 페더러는 메이저 대회 개별 경기에서 총 369승을 올렸다. 이 부문 2위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7위)도 334승이다. 35승은 메이저 대회에서 5번 우승을 할 수 있는 차이다. 페더러는 윔블던에서 105승, 호주 오픈에서 102승을 올렸다. 남자 단식 선수가 특정 메이저 대회 경기에서 100승 이상 올린 건 이 페더러 두 케이스와 나달(프랑스 오픈 112승)뿐이다.

페더러의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기념 촬영에 나선 비외른 보리, 피트 샘프러스, 로저 페더러, 로드 레이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홈페이지





6. 페더러는 2009년 윔블던에서 이 대회 6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 대회 전체로는 개인 15번째 우승이었다. 페더러는 그러면서 피트 샘프러스(51·미국)을 제치고 역대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 주인공이 됐다. 페더러는 올해 호주 오픈에서 나달에게 역전을 허용하기까지 이 자리를 12년 넘게 지켰다.

7. 페더러스는 모국 스위스에서 선정한 '올해의 스포츠인'으로 7번 뽑혔다. 물론 역대 최다 기록이다. 페더러는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에 스위스 대표로 출전해 남자 복식 금메달을 땄다. 스타니슬라브 '스탄' 바브링카(37)가 당시 파트너였다.

8. 베이징 올림픽을 포함해 페더러는 투어 대회 복식에서도 8번 우승을 차지했다. 페더러는 메이저 대회에서도 2000년 윔블던 때 앤드류 크라츠만(51·호주)와 짝을 이뤄 남자 복식 8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 2001년에는 마르티나 힝기스(42)와 짝을 이뤄 혼합복식 국가대항전인 호프먼컵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8은 페더러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최고의 라이벌이자 최고의 파트너였던 로저 페더러(왼쪽)와 라파엘 나달. 런던=로이터 뉴스1





9. 페더러는 나달과 총 9번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맞붙었다. 남자 프로 테니스 역사상 두 선수보다 메이저 대회 단식 결승에서 자주 만난 선수는 없다. (나달-조코비치도 9회로 동률.) 페더러는 이 중 2006, 2007년 윔블던, 2017년 호주 오픈에서는 이겼지만 나머지 6경기에서는 패했다.

10. 페더러가 2003년 윔블던에서 처음 메이저 대회 우승 타이틀을 따낸 이후 메이저 대회는 총 77번 열렸다. 그리고 이 중 79.5%(62번)는 페더러 아니면 나달 아니면 조코비치가 챔피언이었다. 20년 동안 이 남자 테니스 '빅3'를 제외하고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이라도 우승한 선수는 10명이 전부다.

19. 페더러는 ATP에서 해마다 투표로 선정한 '팬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에서 19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어머니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페더러는 '로저 페더러 재단'을 설립해 자선 활동에도 앞장 섰다. 올해도 러이사의 침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구호 활동을 진행했다.



237. 페더러는 2004년 2월 2일부터 2008년 8월 11일까지 237주 연속 ATP 랭킹 1위 자리를 지켰다. 160주 연속으로 이 부문 2위 지미 코너스(52·미국)보다 1년 반 가까이 앞선 셈이다. 여자프로테니스(WTA) 쪽에서도 페더러보다 더 오랜 기간 연속해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킨 선수는 없다.

305. 페더러는 2006년 이탈리아 오픈 결승에서 나달과 5시간 5분(305분) 동안 경기를 치렀다. 페더러의 개인 최장 경기 시간 기록이다. 메이저 대회에서는 2019년 윔블던 결승에서 조코비치와 297분(4시간 57분) 동안 경기를 치른 게 최장 기록이다. 역시 나달과 조코비치가 없었다면 페더러는 우리가 지금 아는 페더러와 다른 선수였을지 모른다.

736. 남녀 단식을 통틀어 페더러 다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많이 이긴 선수는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다. 올해 US 오픈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예고한 윌리엄스는 메이저 대회에서 367승을 거뒀다. 두 선수가 총 736번 승리하면서 테니스 팬을 웃고 울린 기억이 바로 '현대 테니스'였다. 두 선수 등장 이전과 현재 테니스가 다르듯 둘이 떠난 테니스도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황규인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