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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탕 개미’ 해외선물-옵션 4677조 거래…한방에 훅 갈수도

입력 | 2022-09-21 03:00:00

‘한방’ 노리고 초고위험 상품 투자
3040이 개인 거래액 61% 차지… 상반기 손실 5186억… 年 1조 전망
변수 많아 개인이 수익내기 어렵고 국내 상품과 달리 안전장치도 없어
금융당국 “투기수요 대응 검토”



동아일보 DB


국내외 주식과 가상자산에 3억 원을 투자했던 30대 회사원 이모 씨는 올여름 투자금이 1억6000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1억 원이 넘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이 씨는 지난달 해외 선물·옵션 투자에 뛰어들었다. “주식 투자에 비해 평균 15배 높은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한 유튜버의 성공담에 혹했다. 하지만 선물·옵션 상품 시세는 그의 예측과 반대로 움직였고, 이 씨는 하루 만에 투자금 4000만 원을 모두 잃었다.

최근 글로벌 증시와 코인 시장의 침체가 길어지자 ‘한 방’을 노리고 초고위험 상품인 해외 파생상품 투자에 뛰어드는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상품과 달리 해외 파생상품 투자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어 이른바 ‘도박 개미’들은 연간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보고 있다.
○ ‘도박 개미’ 해외 파생상품 거래 5000조 원 육박
20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개인투자자의 해외 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4677조4992억 원으로 집계됐다. 기관투자가와 법인 거래액(1104조7534억 원)의 4배를 웃도는 규모다. 특히 30, 40대가 상반기 개인 거래액의 61%를 차지했다.

개미들의 해외 파생상품 거래액은 2018년 3625조 원대에서 지난해 7387조 원대로 3년 새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주식, 코인 시장이 부진하자 개인 투기 수요가 해외 파생상품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나스닥100,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처럼 해외 주식, 원자재, 통화 등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선물·옵션 상품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증시의 막장’으로 꼽히는 해외 파생상품에 발을 들이는 것은 현물 투자와 달리 가격이 하락해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액의 증거금으로도 최대 30배까지 레버리지가 가능해 초고수익을 좇는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 매년 1조 원 넘게 손실…안전장치 없어
하지만 레버리지가 큰 만큼 투자 위험도 높아 실제 수익을 내는 개미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해외 파생상품 투자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은 올 상반기에만 5186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개미들의 손실 규모는 2020년(1조2203억 원)과 지난해(1조1091억 원) 2년 연속 연간 1조 원을 넘어섰다. 올해도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3년간 주식 투자로 5억 원 넘게 모았던 신모 씨(33)도 올 초 해외 선물·옵션 투자에 나섰다가 2억 원 가까운 손실을 내고 투자를 중단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파생상품은 가격 변동 폭이 크고 변수가 많아 개인투자자들이 시세를 예측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해외 파생상품은 투기성이 짙지만 투자자 보호 장치는 없어 ‘개미들이 무덤’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개인이 코스피200 선물·옵션 같은 국내 파생상품에 투자하려면 사전교육 1시간, 모의거래 3시간을 의무적으로 거치고 1000만 원 이상을 예탁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 파생상품은 이런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파생상품에 투기 수요가 몰리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