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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연락 않겠다” 스토킹 살인범 말에… 경찰 영장신청 안해

입력 | 2022-09-17 03:00:00

[신당역 스토킹 살인]
역무원 살릴 기회 수차례 있었다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추모 글 16일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이틀 전 이곳에서 피살된 역무원 A 씨를 추모하는 메모들이 붙어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한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과 관련해 법원과 검경이 피의자 전모 씨(31·구속)의 범행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 씨는 올해 초 피해자 A 씨가 고소한 스토킹 혐의 관련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며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고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A 씨가 처음 전 씨를 고소했을 때는 법원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던 전 씨가 이후 A 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했는데도 검경은 접근금지 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16일에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스토킹 처벌법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막을 기회 여러 차례 있었다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입사 동기였던 역무원 A 씨(28)를 흉기로 살해한 전모 씨(31·구속)가 올 초 스토킹 혐의로 고소된 후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 앞으로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그 진술을 받아들이고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불구속 상태였던 전 씨는 이후에도 A 씨에게 계속 연락하며 형량을 줄이기 위해 합의를 종용했다.

16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0월 사건이 표면화된 후 약 1년 동안 이처럼 여러 차례 법원과 검경이 전 씨의 범행을 막을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도움 받고 싶다” 첫 고소 후 영장 기각

“죄송합니다” 살해범 구속 수감 A 씨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전모 씨는 1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심문을 마치고 나오던 전 씨는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죄송하다”고만 했다. 전 씨는 이날 구속 수감됐다. 뉴시스 

경찰에 따르면 2019년부터 스토킹에 시달린 A 씨는 지난해 10월 4일 “도움을 받고 싶다”며 처음으로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전 씨에게 여러 차례 ‘A 씨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경고성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전 씨는 연락을 자제하는 대신에 거꾸로 “돈을 주지 않으면 유포하겠다”며 A 씨에게 불법 촬영한 영상물을 보냈다. 해외 웹하드 주소 등 유포를 암시하는 캡처 화면을 보내면서 “자살하겠다”고도 협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지난해 10월 7일 불법 촬영과 협박 혐의로 경찰에 전 씨를 고소했고, 다음 날 경찰은 전 씨를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구속사유 심사 시 범죄의 중대성 및 재범 위험성과 함께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도 감안해야 하는데 이런 고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사건 관계 변호사는 “전 씨가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점이 영장 심사 때 참작됐다는 말이 나온다”며 “피해자 입장을 고려한 발부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 수사 단계 신변보호 미흡

경찰은 지난해 10월 고소 후 한 달 동안 A 씨를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시스템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후 A 씨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기간을 연장하거나, 스마트워치 지급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접근 금지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21일 시행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찰은 스토킹 행위 시 가해자에게 △100m 이내 접근 금지 △피해자 통신 접근 금지 △유치장·구치소 유치 등의 잠정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상 징후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주위 시선 때문에 피해자가 보호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분리 조치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 2차 고소 후 “더 적극적 조치 있었어야”
전 씨는 수사 중인 상황에서도 A 씨에 대한 연락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A 씨는 올 1월 전 씨를 다시 고소했다. 경찰은 이때 ‘앞으로 연락하지 않겠다’는 말을 믿고 전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당시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혐의를 인정한 발언은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인데 이 말만 믿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올 5월 재판이 시작되고 검찰이 징역 9년을 구형하자 전 씨는 합의를 종용하며 스토킹을 이어갔다.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스토킹처벌법상 반의사불벌죄가 2차 피해를 조장한 것이다. 원하던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전 씨는 결국 1심 선고 전날 지하철역으로 찾아가 A 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3년여 동안 전 씨가 A 씨에게 문자 등으로 접촉한 횟수는 총 370여 차례에 달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검찰이 9년을 구형했을 때 전 씨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것이란 사실은 이미 예견됐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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