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김경욱 지음/302쪽·1만4000원/문학과지성사
광고 로드중
두 시간 전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병실에서 나온 나. 간병인에게서 아버지가 임종 직전이란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간 나에게 아버지는 대뜸 “형은?”이라고 물어온다. 장남인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40년 전 잠시 집에 머물렀던 한 형을 떠올린다.
결국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장례식장에 나타난 한 사내를 보며 ‘그 형’일 거라 짐작한다. 나는 남은 가족에게 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지만, 알게 되는 건 이전까지 몰랐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들.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는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는 걸 그만 멈추기로 한다.
올해 데뷔 29년을 맞은 저자의 아홉 번째 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문학과지성사) 이후 8년 만이다.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년)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2003년) ‘장국영이 죽었다고?’(2005년) 등으로 탄탄한 팬층을 구축해 온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위에서 소개한 단편 ‘타인의 삶’은 지난해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광고 로드중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설들은 읽는 내내 타인을 상대로, 더 나아가면 자기 스스로를 상대로 ‘가면’을 쓰고 있는 누군가를 직면하게 된다. 그건 내면에 상존한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순간 동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나란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