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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나간 성적 지상주의가 범죄까지” 자성 목소리

입력 | 2022-07-26 15:04:00


가장 공정해야 할 일선 학교의 내신 평가 과정에서 잊을만 하면 시험지 유출 사건이 터지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비뚫어진 성적 지상주의가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26일 광주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광주 서부경찰서는 업무방해·건조물침입 등 혐의를 받는 광주 대동고 2학년생 A·B군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말 한밤중 학교 4층 교무실 내 열린 창문을 통해 침입, 과목별 출제 교사들의 노트북 4대에서 출제 시험지 답안이 기록된 문항 정보표 등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노트북 화면을 일정 시간마다 이미지 파일로 수시 저장하는 ‘악성 코드’를 설치·활용해 화면 이미지 저장 파일 형태로 남아있던 문항 정보표, 시험지 등을 다시 USB에 담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경찰에 ‘평소 성적 향상에 대한 부담과 욕심이 컸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학생 모두 중상위권에 속했고 성적·가정사 관련 특이 상담 내역은 없었다. 학교 안팎에서는 특히 A군을 ‘모난 구석 없고 조용했던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앞선 지난 2018년에도 대동고에서는 시험지 유출 사고가 있었다.

대동고 당시 행정실장은 2018년 4월과 7월 2차례에 걸쳐 인쇄실에서 3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 모든 과목 시험지를 빼내 복사한 뒤 학생 어머니에게 통째로 건넨 혐의를 받았다.

의사인 어머니는 행정실장으로부터 받은 시험문제 중 일부를 정리해 아들에게 기출문제인 것처럼 건네 미리 풀어보고 시험에 응시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어머니는 경찰 수사 과정에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들의 성적을 올려야 한다고 부탁했다. 아들이 취약한 과목의 고난도 문제를 중심으로 기출문제 편집본을 만들어 건넸다’고 진술했다. 결국은 ‘내 아이도 의사가 돼야 한다’는 어머니의 엇나간 교육열이 범행 동기였다.

이후 행정실장과 어머니는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뒤 1·2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 받았다.

비슷한 무렵인 2018년 서울에서도 숙명여고에 재학 중인 쌍둥이 자매가 아버지인 교무부장으로부터 답안지를 미리 받아본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이들 쌍둥이 자매는 숙명여고에 재학 중인 지난 2017년 2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 아버지로부터 5차례에 걸쳐 답안지를 시험 전에 미리 받는 등 학교 성적 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자매 모두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지만,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선고돼 복역을 마쳤다.

숙명여고 사태 이후 중·고교 내신 시험문제 유출 재발 방지를 위해 ‘학업 성적 관리 시행 지침’이 강화됐지만, 이번에는 학생들에 의해 교무실 내 출제 교사 노트북까지 맥 없이 2차례나 뚫리며 허점을 드러냈다.

한 교육 전문가는 “학교 성적 높이기와 입시 경쟁에만 매달리다 보니 교육의 중요한 사명인 인성 함양을 도외시하게 되는 이른바 ‘맹시 현상’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라며 “중요한 본질을 다시 짚어봐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한 현직 교사는 “결국 학교 현장도 사회 모순의 반영이라고 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는 비뚫어진 욕망과 과열된 경쟁이 부른 화다”며 “고착화된 학벌 구조 속에 중압감을 느낀 학생들이 엇나간 것은 아닌지 우리 교육 현장이 되돌아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조미경 광주시교육청 장학관은 “이번 일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경쟁 외에도 책임, 공정, 정직 등 다양한 삶의 가치를 배우고 몸으로 익힐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현실적인 가치에 너무 매몰돼 하나의 가치만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않도록 기존의 인성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광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