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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류호정 장혜영은 왜 당 내 성폭력에 침묵할까[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못 다한 이야기’]

입력 | 2022-06-18 13:00:00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




지난달 말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강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당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했지요. 강 전 대표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피해사실을 알린 것은 6개월이 넘도록 당 지도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강 전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당 행사 뒤풀이에서 한 당 내 인사가 그의 허벅지 안쪽을 만지는 등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강 전 대표는 이 사실을 이틀 후 당시 여영국 당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회의에서 알렸지요. 그런데 정의당은 다른 정당의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강 전 대표 사건을 대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진상조사부터 하는 게 순서입니다. 그런데 강 전 대표의 설명을 들은 여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이 일은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다만 다음에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 때는 절차대로 처리하겠다. 내가 해당 위원장에게 엄중 경고하겠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사실상 사건을 듣자마자 종결한 것이죠. 함께 있던 지도부 인사들 중에 ‘그렇게 간단히 처리하면 안 된다’고 문제를 지적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가 이렇게 처리했다면 정의당은 뭐라고 했을까요.

6개월이 지나도록 진상조사조차 없는 사이에 가해자는 지난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후보에 공천됐습니다. 견디다 못한 강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폭력 피해사실을 알렸지요. 정의당의 해괴한 일처리는 바로 다음날(17일) 또 벌어졌습니다. 언론에 ‘긴급 대표단회의 결과’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이동영 당 수석 대변인이 브리핑을 한 것이죠. 요지는 이 사건이 해당 위원장이 옆자리에 앉는 과정에서 강 전 대표를 밀치면서 벌어진 ‘불필요한 신체접촉’이었고, 강 전 대표가 이 사안이 성폭력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 언론에 배포한 그 보도자료에 가해자인 해당 위원장의 사과문을 첨부했습니다. 진상조사는 하지도 않았는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공개한 바로 다음날 당이 성폭력은 없었다고 브리핑을 하고, 가해자 사과문을 대신 배포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정의당 당직자들의 행태도 가관입니다. 강 전 대표가 갈무리해 공개한 당직자 텔레그램방 대화방을 보면 이들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여지껏 참았는데 선거이후에 문제 제기해도 될 일을 왜 좀 더 참지 못했을까’ ‘강민진은 지저분하게 해당 행위를 하지 말고 떠나십시요’ ‘사건이 안 되는 내용이라 2차 가해 운운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이런 내용들이 즐비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의 어른이라는 심상정 의원, 차세대 유망주라는 류호정 장혜영 의원 등 청년 정치인들이 왜 이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지입니다. 사석이나 회의석상에서 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공개적으로 무책임한 당 행태를 지적하고, 피해자와 함께 연대하겠다는 상투적인 말조차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침묵상태인 것이죠.

심 의원은 지난해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성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을 대신해서 제가 묻는다. 윤 후보는 정말 성범죄자 안희정 씨 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윤 후보의 부인인 김건희 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두둔한 통화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죠. 윤 후보는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당 내 문제에 대해서는 반년이 넘도록 아무 언급도 없습니다. 류·장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류·장 의원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도 거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당 내에서 벌어진 일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나봅니다.

도대체 왜 정의당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걸까요. 강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에서 문제가 벌어졌을 때 정의당에는…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겨 꼬리를 자르고, 밖으로 안 알려지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악순환이 있다”고요. 세상 무엇보다 조직보위가 최우선이라는 것이죠. 평시에도 그럴 진데 공교롭게 대선, 지방선거가 연이어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앞서 소개한 한 당직자의 ‘여지껏 참았는데 선거이후에 문제 제기해도 될 일을 왜 좀 더 참지 못했을까’란 말이 딱 그거 아니겠습니까. 여성의 인권, 성폭력 같은 문제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뒤에 놓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당 내 성폭력 피해자는 외면당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류호정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14일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가 2심에서 감형된 판결과 관련해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오늘 유족의 가슴에 다시 한번 대못을 박았다.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물을 순 없다’는 게 감형의 이유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논리, 아무도 동의할 수 없는 법리”라고 브리핑했더군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로 존립위기에 빠진 정의당은 13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가장 두려운 것은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것, 의석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정치가 지속 가능한가’라는 시민의 물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제 눈의 들보는 안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며, 조직에 해가 된다면 당 내 성폭력조차 묻고, 그 당의 어른과 기대주조차 이런 사태에 침묵하는 정당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한다면…그게 더 무서운 세상일 겁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