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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재택근무 반란과 회사의 역습[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입력 | 2022-06-12 08:00:00

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16)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로켓맨과 대통령의 설전
“경기가 아주 나빠질 것 같다. 직원 10% 줄일 것.”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포드는 사람 더 뽑는다는데? 달나라 잘 다녀와 머스크.” (조 바이든 미 대통령)

‘파랑새’(트위터 상징)로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또 한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머스크가 2일(현지 시간) 경영진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공개되면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메일에서 “미국 경기가 매우 안 좋은 느낌”이라며 전체 직원 중 10%를 감축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테슬라의 임직원이 약 1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1만여 명을 자르겠다는 폭탄 발언이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 3일 테슬라 주가는 9% 넘게 폭락했다. 회사 대표의 비관적 경기 전망이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논란이 커지자 머스크는 말을 바꿨다. 그는 “직원이 줄지 않을 것”이라며 “테슬라의 많은 영역이 인력 과잉 상태다. 정규 급여를 받는 사무직 수가 줄고 시간제는 늘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루 뒤에는 “테슬라 직원 수는 향후 12개월 동안 증가할 것이다. 정규 급여를 받는 직원 수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진땀을 뺐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 ‘대통령’도 있었다. 이날 미국 노동부는 5월 한 달 39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실업률은 3.6% 수준이었다는 일자리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고용 시장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하다”고 자평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머스크의 이메일 내용에 대해 물었고, 바이든 대통령은 “(테슬라 경쟁사인) 포드와 스텔란티스는 투자를 압도적으로 늘리고 있다”며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의 달나라 여행에 많은 행운이 따르길”이라며 머스크의 우주 탐사 사업을 비꼬기도 했다.

가만히 있을 머스크가 아니다. 트위터에 “감사합니다 대통령님!”(Thanks. Mr President!)이라고 적어 올렸다. 둘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미국 사람 아니어도 안다. 오죽하면 미 CNBC는 “대통령의 간결한 발언은 그간 반복해서 바이든을 비판해 온 머스크와의 가장 최근의 마찰”이라고 평했다. 대통령과 괴짜 억만장자의 기싸움이 꽤나 흥미롭다.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테슬라 감원은 직원 불만 잠재우기?
그런데, 머스크의 감원 언급으로 잊혀진 것이 있다. 바로, 테슬라의 재택근무 종료다.

머스크는 지난달 말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원격근무를 하더라도 누구나 주당 최소 40시간은 사무실에서 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무실은 원격 사무실이 아닌 실제 동료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뜻한다”고 했다. 주당 40시간이면 하루 8시간씩 5일은 회사에 나와야 한다. 사실상 재택근무의 종료를 선포한 셈이다. “사무실에 안 나올 생각이면 회사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머스크는 사무실 출근에 대한 생각도 자세히 늘어놨다. 그는 “테슬라는 지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원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지 않았으면 테슬라는 일찍이 파산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혁신과 생산성은 사무실에서 나온다는 설명으로 보인다.

이 역시 전 세계 언론을 뜨겁게 달궜는데, 일주일도 안 돼 머스크가 “직원 10% 감축”을 언급하면서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어떤 직원이 사무실 복귀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어, 나오기 힘들면 영영 집에서 쉬어~”라는 답변을 듣지 않을까. 머스크의 감원 발상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결과적으로 이슈를 덮어버렸다.

‘머스크가 생각보다 꼰대였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테슬라의 근무 여건은 머스크 아이디어만큼 빛나진 않는 것 같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머스크가 꿈을 꿀 때, 직원들은 악몽을 꾼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NYT는 “머스크는 팀과 상의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발표하면서 직원들에게 그의 꿈과 기술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도록 강요한다”고 했다. 멋진 아이디어를 일단 세상에 내놓고, 직원들을 닦달한다는 의미다.

머스크가 2016년에 발표했던 완전 자율주행 기능과 완전 자동화 공장이 그 예다. NYT는 “이 발표는 엔지니어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이후 머스크는 이 주장의 다른 버전을 매해 반복했다”고 꼬집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 부분이다. NYT는 “테슬라 직원을 인터뷰하는 것은 때때로 내가 기자라기보다 치료사였던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올해 3월 독일 베를린 기가팩토리 가동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행사에서 머스크는 첫 번째 생산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하면서 “너무 기쁘다”며 춤을 췄다. AP 뉴시스




● 美 기업들의 감원과 하이브리드 근무 시대
올해 초만 해도 미국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기업들이 직원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였다. 회사들은 서로 사람을 데려가려고 했고, 직원들은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표를 던지겠다는 각오였다. 각 기업들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일상 활동이 재개(리오프닝)됐음에도 재택근무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신비월드 8화’(재택근무 중단? 차라리 떠난다…코로나 후 사무실 다시 붐빌까)에서 상세하게 다뤘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로 기업들이 잇달아 감원에 나서면서 직원들이 재택근무 유지를 강하게 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입자 감소 쇼크를 기록한 넷플릭스는 최근 직원 1만1000명 중 15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 온라인 증권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9% 감원을 예고했고,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도 사람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감원까지는 아니어도 신규 고용을 중단한 업체는 수두룩하다. 소셜미디어 스냅은 지난달 말 신규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메타)과 엔비디아, 우버,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신규 채용을 연기하거나 동결하기로 했다. 애플은 소매점과 기술지원 분야에서 충원을 보류했다.

기업들이 감원을 무기로 군기를 잡는다고 해서 재택근무라는 단어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재택과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업무’(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의 혼합형)는 일정 부분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개발자 등 전문직들이 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닉 블룸 미 스탠포드대 경제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은 대면 근무와 원격 근무를 병행하는 것을 월급의 8% 정도를 올려주는 혜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집에서 일하는 날의 가장 큰 매력은 출퇴근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무실에 갈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통근을 하지 않으면 새 옷을 사 입는 사람들의 비율이 20% 포인트 감소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미국계 구직 사이트 플렉스잡스는 직장인들이 원격으로 일하면 교통비, 의류비, 식비 등 평균 연 4000달러(약 500만 원)를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픽사베이




● 5000만 명의 직원, 5000만 개의 사무실
미국에서는 2년 전에 약 5000만 명의 직원이 사무실을 떠났다.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직장인에 비해 ‘화이트칼라’(전문직 노동자)가 코로나19 확산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더 많이 했다. 컨설팅 기업 갤럽에 따르면 팬데믹(대유행) 이전인 2019년 미국에서는 취업자의 4% 가량이 재택근무를 했는데, 2020년 5월 이 수치가 43%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화이트칼라는 6%에서 65%까지 재택근무가 늘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화이트칼라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PC에서 이뤄진다. 지난해만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이 질병에 걸려서 아예 일을 못하는 것 보다는, 집에 가둬놓고서라도 일을 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 생각보다 효율성도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재택근무로 팀원들이 회의실에서 모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줌’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이 빠르게 이를 대체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사무실에 복귀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내용이 흥미롭다. 직원들은 햇빛이나 편한 옷차림, 고양이와 보내는 시간, 불안감을 숨길 수 있는 공간 등을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이런 온갖 이유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꼽힌 재택의 장점은 ‘근무 환경’이었다. 다양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직원마다 선호하는 사무실 온도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당장 복사기 작동법을 매번 물어보는 동료가 떠오를 것이다. 직전 주말 있었던 축구 경기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사람은 직장 상사라 피할 수도 없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37세 직장인 케렌 기포드는 NYT에 “다른 사람을 위해 지어진 공간에서 내 경력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재택근무를 하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5000만 명의 직원이 5000만 개의 사무실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육아 등으로 일과 삶의 경계가 필요한 사람들은 출근을 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퓨처포럼이 지난해 전 세계 직장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워킹맘’의 50%가 대부분 또는 항상 원격으로 일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워킹파더’는 43%였다. 절반 정도는 출근을 희망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사에서 이들은 단순히 명확한 일상의 구분을 원했을 수도 있지만, 전면 재택근무 시 부하직원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고려했을 듯하다. 응답자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중간 관리자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다수의 직장인이 재택근무 또는 적어도 하이브리드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재택근무를 하는 이들에게는 이른 아침 지옥철과 딱딱한 구두, 면전에서 당하는 냉혹한 업무 평가가 유물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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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회사는 고민이 많다. 직원들이 일에 집중은 할 수 있을까, 소속감은 어떻게 만들지, 직원 간 유대감은 생기기나 할까. 생산성보다 이런 것들이 더 걱정일 수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방금 가졌던 아이디어는 하루 종일 서로 부딪히며 발전된다”고 했고,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도 “재택근무는 자발적인 아이디어 창출에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화이트보드로 가서 직원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도록 하는 회의가 그립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을 하는 것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핵심 무기인 IT 기업들이 사무실을 주기적으로 귀엽고 예쁘고 깜찍하게 바꾸는 것은 직원들의 창의성이 샘솟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새로운 곳에 업무 환경을 꾸려서 일하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에단 번스타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공간에 사람들을 배치하면 대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는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그 대화가 혁신, 창의성에 도움이 될 지는 (관련) 데이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작위적인 우연(만남)이 생산적이라는 생각은 현실보다 동화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업무 속도가 떨어진다는 연구는 있다. NYT는 “상위 50대 비디오 게임 회사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원격 근무로 전환한 회사는 대유행 이전보다 신제품 출시가 지연된 반면, 사무실에서 일한 회사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재택근무의 업무별 가능성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대표는 “당신이 하려는 작업이 개별적인 성격이라면 원격으로도 가능하다. 그런데 리더십이라면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하이브리드 시대에 일부 직원의 고립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의자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허먼 밀러의 앤디 오웬 CEO는 “사무실로 복귀하기를 거부하는 누군가가 불이익을 받거나 고립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하이브리드 근무를 도입한 일부 기업들은 업무를 나누는 것을 곤란해 하고 있다. 일을 시킬 때 사무실에서 눈에 보이는 직원부터 떠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직원들끼리의 유대감과 회사의 소속감 형성을 위해 사무실 출근을 고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글로벌 운용사인 해리슨 스트리트의 크리스토퍼 메릴 설립자는 “사무실에서는 누군가 눈을 쳐다보고 악수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앉아서 듣고 있을 수 있다. 이는 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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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한 회의실에 작별 인사
팬데믹 기간에 회사 사무실들도 격변했다. 책상이나 회의실 위의 손 소독제는 노트북만큼이나 익숙하다. 좌석 별로 칸막이가 생긴 곳도 있을 것이다.

최근 모습은 어떨까. NYT는 지난달 10일 ‘지루한 회의실에 작별 인사’라는 글에서 “코로나19 초기 회사는 급히 사회적 거리두기용 회의실을 마련했다”며 “이제는 직원을 사무실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협업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NYT가 꼽은 4가지 변화상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모양과 크기의 변화다. 부장님이 ‘왕 자리’에 앉는 직사각형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줄면서 규모가 작아졌다. NYT는 공간을 쉽게 넓히고 줄일 수 있도록 회의실이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두 번째는 달라진 모습이다. 주거용 인테리어를 뉴욕 사무실에 도입한 벤처캐피탈도 있다. 안락함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세 번째는 새로운 위치다. 최근 미국에서는 회의실이나 건물 편의 시설 등을 야외에 조성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전염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듯하다.

마지막은 신기술이다. 일부 회의 참여자가 가상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회의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회의실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전문업체 CBRE의 최근 설문에서 응답자 중 76%가 사무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은 것이 화상회의 도구였다. 회의실 내부에 원격 마이크나 360도 카메라를 설치한 곳도 있다. ‘디지털 화이트보드’ 등도 새로운 기술로 언급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기업 회의실들이 변화를 거듭했다고 지난달 1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NYT 기사 캡쳐




● “스마일~” 초감시 사무실 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쁘게 신경 써서 만든 회의실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회사의 ‘랜선 감시’를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할지 모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4월 직원 감시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1년 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위원회는 2020년 3월 팬데믹 초기 직장 폐쇄 이후 몇 주 만에 감시 도구에 대한 검색이 18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14일 “감시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의 매출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했다”고 했다. 사용자의 화면을 동영상으로 녹화하거나 주기적으로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있는지 확인하는 타임닥터는 2020년 4월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3배나 뛰었다. 업무에 걸리는 시간을 추적하는 데스크타임의 직원은 같은 기간 4배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의 1000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60%가 “특정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17%는 “도입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직원을 감시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직원들의 안전과 기업의 중요한 정보 보호, 생산성 측정 등을 위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JP모건은 통화, 채팅 기록, 이메일 등을 검색하고 직원이 건물에 있는 시간까지 추적한다. 일부 스타트업은 데이터나 회사 기밀 유출 등을 우려해 근로자를 감시한다”고 했다.

생산성 측정을 위한 목적도 있다. 기업은 생각보다 직원의 활동을 섬세하게 측정할 수 있다. 기술이 뒷받침되면서다. 직원들의 모든 키 입력이나 마우스 움직임을 추적하고 이메일을 스캔할 수 있다. ‘게으름뱅이’를 잡아내는 인공지능(AI)도 있다. 지난해 일본 기술 회사인 후지쯔는 직원의 표정으로 집중력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이는 직원이 작업 중 음식을 먹는 경우 관리자에게 알린다. 상사가 자리 주변에 왔을 때 PC 화면을 바꾸는 ‘알트(Alt)+탭(Tab)’으로 도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잔인하다.

국내에서도 일부 스타트업이 전면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한 회사는 사무실 자체를 없애버렸다. 이 회사는 원격 근무를 허용한 대신에, 업무 시간에는 카메라를 켜놓게 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재택근무가 유일한 장점인 회사”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수직적인 분위기”라는 평이 많았지만, 재택근무 조건만큼은 반기는 듯하다.


● 하이브리드 근무 시대, 기업들의 룰 만들기
최근 국내 기업 중에 재택근무 때문에 진통을 겪고 있는 회사가 있다. 카카오다. 이 회사는 7월부터 적용하는 새 근무제를 30일 발표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대신에, 업무시간에 음성으로 팀원과 연결돼야 하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직원들은 “지나친 감시이며 공통 근무 시간으로 유연근무제가 사실상 무너졌다”고 반발했다. 카카오는 31일 집중근무시간을 재검토하고, 조직별로 근무제와 관련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카카오가 매를 먼저 맞는 것일 뿐, 다른 기업들도 마주해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하이브리드 근무가 시행되고, 회사와 직원들이 세부적인 항목을 조율하다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는 하이브리드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꽤 활발한 편이다.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합의점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분위기다. 이코노미스트는 ‘명확성’을 우선순위에 놓고 논의하라고 조언한다. 사무실에 나오는 날과 나오지 않는 날, 회의가 있는 요일 등을 선명하게 공유하라는 것이다. 이외에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이나, 하이브리드 회의를 진행할 때의 요령 등을 만들어 놓는 것도 방법이다. 영국 런던시티대 로라 엠프슨 교수는 최근의 근무 제도의 변화와 관련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반대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은퇴할 때가 된 것처럼 들린다”며 “변화를 막거나 통제하려고 하기보다 이 같은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사무실에 돌아와 지루한 회의실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수 있다. 무릎 위 스마트폰을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더라도 하이브리드 근무 시대를 대비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또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말이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