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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황소’엔 어머니와의 분리불안이 담겨있다”

입력 | 2022-06-07 11:15:00


이중섭 ‘황소‘(35.5×52㎝·1953)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지극한 아내 사랑은 유명하다 6·25전쟁 당시 월남한 후 경제적 문제로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처가로 돌려보낸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것에만 골몰했다. 그는 1955년 4월 대전에서 개인전을 마친 뒤 자학, 거식증, 피해망상 등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가 돈을 벌지 못하면서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이중섭은 왜 그토록 아내와의 이별을 두려워했을까? 지난달 26일 출간된 ‘그림, 그 사람’(아트북스)을 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겸 미술평론가 김동화 씨(53)는 6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사랑하는 대상의 원형인 어머니와의 관계 문제가 먼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화가가 3~5세 사이 아버지가 죽었고, 어머니의 애정은 막내였던 화가에게 집중됐다. 화가는 보통학교 3~4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젖을 먹었고 좋아하는 이성상에 대해 “어머니처럼 편한 여자가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강력한 영유아기 애착관계가 분리불안을 낳았고, 그게 아내와의 관계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책은 이중섭을 비롯해 박수근 진환 양달석 황용엽 등 한국 근현대화가 8인의 그림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진단했다.

책은 화가의 정신역동(인간 행동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무의식적인 힘)이 그림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분석한다. 김 씨는 이중섭의 ‘황소’에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욕구가 담겼다고 본다. 그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모성적 원형을 간직한 소에 불알이 강조된 수소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 이중섭의 황소다. 황소에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담은 것”이라며 “어머니와 자신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공생적 욕망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등 그의 작품에서 꾸준히 드러나는 원환구도 역시 어머니와 하나의 덩어리가 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의 경우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그의 주된 정신역동으로 봤다. 보통학교 진학 후 가세가 기울어 상급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야 했지만 내향적 성격과 감내의 기질을 타고난 그는 좌절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그러한 억압의 정신역동이 여러 번 물감을 덧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겹’으로 드러났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참고 또 참는 것의 반복이었던 박수근의 인생궤적처럼 그의 그림도 물감을 많게는 20번 가량 올리고 또 올리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계속해서 쌓고 견디며 또 올리는 ‘겹’은 내적 소망을 억압하는, 욕망의 죽음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살아있는 황용엽, 2020년 별세한 김영덕의 경우 저자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의 실제 구술이 들어가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첫 인터뷰를 5시간 동안 했다는 황용엽은 어머니의 유방절제술로 친모와 유모 두 양육자를 둬야 했던 유년기, 인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한 도피와 월남,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참전의 경험을 생생하게 털어놓는다. 김 작가는 “황용엽이 수도 없이 그린 ‘인간’은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그가 겪은 정신적 외상이 그로테스크하고 감정표현불능(자신 또는 타인의 감정상태를 인식 또는 언어화하지 못하는 증상)적 양상으로 화폭에 드러났다”고 했다.

화가들의 내밀한 심리를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었던 건 20여 년 간 그림에 천착해 온 덕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레지던트 시절 종로서적에서 박수근 화집을 보고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매료된 그는 지도에 화랑을 표시해 1주일 동안 전국 화랑을 다 돌았다. 이후 그로리치 화랑에서 산 박수근의 드로잉 ‘초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0여 점의 드로잉을 수집해 2019년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시중에 나와 있는 미술서적 중 안 본 게 거의 없다. 화가들과 관련된 모든 기록들에서 시작해 박수근 진환 양달석 선생님의 경우 유가족들을 직접 만났고, 생존한 화가는 직접 진술을 듣는 방식으로 치밀하게 분석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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