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맥주 속속 출시
대한민국 맥주업계의 ‘국룰(국민 룰)’이던 ‘4캔=1만 원’ 공식이 깨졌다. 맥주 주재료인 맥아(보리) 등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급등하면서 2013년 편의점 수입 맥주 판매 이후 굳어진 가격 상한선이 9년 만에 조정된 것.
그간 국내 맥주 시장은 원료나 개발 과정과 무관하게 모든 제품 가격이 4캔 1만 원 공식에 묶여 있었다. 편의점 묶음 판매는 가정용 판매 채널 중에서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여기 포함되지 않으면 소비자 선택을 받기 어려웠다. 소비자들은 ‘1만 원의 행복’을 누렸지만, 맥주 시장이 와인처럼 다양한 가격과 품질로 경쟁하며 발전해 가는 데는 걸림돌이 됐다.
공고했던 가격 장벽이 깨지면서 이전에 없던 ‘틈’이 생겼다. 좀 더 높은 값을 받더라도 제대로 된 품질의 고급 맥주를 선보이려는 곳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주류업계는 물론이고 호텔, 편의점 업계도 ‘프리미엄 맥주 전쟁’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맥주인듯 와인인듯… 오크통 숙성으로 진하고 샴페인처럼 달콤하다
제주맥주, 고급화 전략… 2만원 숙성맥주 호평
블루보틀과 손잡고 커피맛 맥주 개발도
호텔-브루어리 협업 시그니처 맛 선보여
편의점 업계도 고급맥주로 시선
제주맥주가 프리미엄 맥주를 표방하며 선보인 ‘배럴 시리즈’. 해외 위스키 업체 및 커피브랜드 등과 손잡고 오크통(배럴)에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수개월 숙성시켰다.
첫 작품인 ‘임페리얼 스타우트 에디션’은 22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위스키 브랜드 하이랜드파크와 손잡고 싱글몰트 위스키 12년산 오크통(배럴)에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약 11개월간 숙성시킨 것이다. 한 병에 2만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이었지만 고품질 프리미엄 맥주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이 몰려들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준비 물량 3000개가 출시 사흘 만에 소진됐다.
제주맥주가 커피브랜드 블루보틀과 협업한 ‘블루보틀커피 에디션’.
제주맥주 ‘블루보틀커피 에디션’은 묵직한 풍미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프리미엄 맥주의 대중화를 위해 제주에서 ‘용감한 주방’ 프로젝트도 시작한다. 해외 브루마스터들이 개발 중인 맥주를 주변 지인들과 나눠 마시는 문화에 착안해, 소규모 양조 설비인 스몰 배치 중심으로 양조사들이 실험하는 독특한 맥주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차별화된 식음 경험을 표방하는 호텔들도 프리미엄 맥주 개발에 적극적이다. 유명 브루어리와 협업해 호텔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시그니처 맥주’를 내놓으며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파라다이스시티와 인천맥주가 만든 프리미엄 맥주 ‘파라다이스 시그니처 에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프리미엄 맥주 ‘아트 페일 에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아트 페일 에일’은 한 달 평균 약 1000잔이 팔릴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는 설연휴 기간 국내 수제 맥주 전문 기업 카브루의 구미호 맥주 프리미엄 에디션 ‘구미호 루비테일’ 맥주를 판매했다. 와인 배럴에서 7개월 이상 숙성 기간을 거친 구미호 루비테일 맥주는 흑미, 후추, 생강, 오미자, 복분자 등 한국적인 재료로 만든 ‘흑미 사워’를 미국 프리미엄 와이너리 실버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켜 내추럴 와인 같은 깊은 풍미를 담아냈다.
편의점 이마트24가 300병 한정 판매한 ‘OBC 프리미엄 맥주’.
유통업계 관계자는 “홈술, 혼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보다 다양한 주류를 즐기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가격보다 개인 만족도를 우선순위에 놓는 ‘나심비(나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소비)’ 트렌드와 함께 다양한 개성을 가진 프리미엄 맥주들이 더 대중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